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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CHINA KOREA Biz Portal &amp;gt; 중국알아보기 &amp;gt; 중국문화&amp;amp;사회</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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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테스트 버전 0.2 (2004-04-26)</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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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중국정치</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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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중국의 정치<br/>1. 정치개황<br/>정체	노동연맹에 기초한 인민인주독재의 사회주의국가<br/>(82년 개정헌법 제1조)<br/>권력형태	실질적 공산당 1당독재 (형식상 8개 정당 존재)<br/>건국일	1949. 10. 1.<br/>유엔가입일	1971. 10. 25 (현재 안보리 상임이사국)<br/><br/>2. 주요 지도자(2014년 기준)<br/>习近平<br/>(시진핑)	중국공산당중앙위원회총서기, 중국공산당중앙군사위원회주석, 중화인민공화국주석, 중화인민공화국중앙군사위원회주석<br/>李克强（리커창）	국무원 총리<br/>李源潮<br/>(리위엔차오)	국가 부주석<br/>张德江 (장더장)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위원장<br/>俞正声 (위정셩)	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 주석<br/>王毅 (왕이)	외교부장<br/><br/>3. 중국의 정치파벌<br/>공산당 내부에 다양한 파벌들이 존재하며 이들 파벌간의 상호경쟁과 협력, 그리고 갈등으로 중국정치를 설명하기도 한다.<br/>- 태자당(太子黨): 혁명원로, 주요 엘리트들의 자손<br/>- 상해방(上海幇): 상하이에 정치적 뿌리를 두고 있는 집단<br/>- 청화방(淸華幇): 청화대학 출신<br/>- 단파(團派): 공산주의청년단(共靑團) 출신<br/><br/>4. 양회<br/>양회(两会)는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와 ‘전국인민대표대회’를 합쳐서 부르는 말로 중국 최대의 정치행사이다. 매년 3월 초 두 개의 회의가 서로 비슷한 시기에 열리고, 중국 국가 활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보통 둘을 합쳐서 ‘양회’라고 부른다. <br/><br/>가.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中国人民政治协商会议)<br/><br/>(1) 의미<br/>중화인민공화국의 정책자문기구로 중국의 건국 이전부터 1954년 헌법에 의거 그 기능이 전국인민대표대회로 이관될 때까지 사실상의 중국 의회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1954년 이후 헌법에는 공식적으로 포함되지는 않았으나 역할과 권한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헌법서언).<br/><br/>(2) 조직구성<br/>조직은 전국위원회와 지방위원회로 구성된다(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장정 제19조). <br/><br/>(가) 전국위원회<br/>- 전국위원회는 중국공산당, 각 민주당파, 무당파인사, 인민집체, 각 소수민족 및 각 계 대표, 홍콩, 마카오 특별행정구 및 대만 동포와 귀국교포의 대표와 특별 초청인사들로 구성된다. 지방위원회는 각지의 상황에 따라 전국위원회 조성결정을 참조하여 구성된다(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장정 제20조)<br/>- 매기 임기는 5년이고, 주석, 부주석 및 비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장정 제31조, 제32조).<br/><br/>(나) 지방위원회<br/>- 지방위원회는 각 성, 자치구, 직할시, 시, 자치주 및 일부 현과 시할구에서 각 지방의 상황에 따라 전국위원회 조성결정을 참조하여 구성된다(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장정 제40조).<br/>- 매기 임기는 5년이고, 주석, 부주석 및 비서장으로 구성되어 있다(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장정 제42조, 제43조)<br/><br/>(3) 활동(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장정 제2조)<br/>전국위원회와 지방위원회는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장정에 따라 활동하고, 주요 직능은 정치협상, 민주감독, 찬정의정(参政议政)이다. <br/>(가) 정치협상<br/>정치협상은 국가와 지방의 대정방침 및 정치, 경제, 문화와 사회생활 중의 중요문제에 대한 정책을 결정하기 전에 협상을 진행하고, 결정된 정책을 집행하는 과정 중의 중요한 문제를 협상하는 것이다. <br/>(나) 민주감독<br/>민주감독은 헌법, 법률 및 법규의 실시, 중대방침과 정책의 철저한 집행 및 국가기관과 그 업무인원의 업무에 대하여 건의, 비평을 통해서 감독하는 것이다.<br/>(다) 찬정의정<br/>찬정의정은 정치, 경제, 문화와 사회생활 중의 중요문제 및 국민대중이 보편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문제에 대하여 연구조사를 실시하고 사회사정과 민의를 반영하며 협상 및 토론은 진행하는 것이다. 조사, 연구, 보고, 제안, 건의 및 기타 방식을 통해서 중국공산당과 국가기관에 의견을 제출한다.<br/><br/>나. 전국인민대표대회(全国人民代表大会)<br/><br/>(1) 의미<br/>중국의 형식상 최고 권력기관으로서, 그 상설기관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이다(헌법 제57조). 상무위원회는 전국인민대표대회가 폐회중인 동안에도 국가권력을 상시적으로 행사하는 기관이다.<br/><br/>(2) 조직구성<br/>- 전국인민대표대회는 성, 자치구, 직할시, 특별행정구, 군대에서 선발한 대표로 구성된다. 대표 중 각 소수민족인원이 적당히 있어야 한다.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선거는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가 주재한다(헌법 제59조).<br/>-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는 위원장, 부위원장, 비서장, 위원으로 구성된다(헌법 제65조). <br/>- 매기 임기는 5년이다(헌법 제60조).<br/><br/>(3) 활동<br/><br/>(가)전국인민대표대회의 권한(헌법 제62조, 제63조)<br/>1) 헌법개정<br/>2) 법률의 제정과 개정<br/>3) 기타 국가기관의 조직<br/>4) 국가계획과 예산의 승인<br/>5) 상무위원회에 대한 감독<br/>6) 자치구 및 직할시 설치의 승인<br/>7) 특별행정구의 설립 및 그 제도의 결정<br/>8)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 대한 결정 <br/>9) 임면권 등.<br/><br/>(나)상무위원회의 권한(헌법 제67조)<br/>1) 국가권력기관 자체의 조직업무<br/>2) 기타 법률에 대한 입법권과 법률해석권<br/>3) 헌법 및 법률 감독권<br/>4) 전국인민대표대회 폐회기간 중 임면권<br/>5) 기타 중요한 문제에 대한 결정권<br/><br/>5. 세대별로 본 중국정치 지도자 집단<br/>중국은 일반적으로 최고지도자를 기준으로 정치적 세대를 구분한다. 마오쩌둥(毛澤東), 덩샤오핑(鄧小平), 장쩌민(江澤民), 후진타오(胡錦濤) 그리고 현재 중국 정부의 주석인 시진핑(習近平) 순으로 각 1~5세대로 볼 수 있다. 시기별 전반적인 지도이념은 과거 이념과 체제를 강조하는 것에서 현재 실용주의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다.<br/>세 대	주요내용<br/>마오쩌둥 시대<br/>(제1세대)<br/><br/>	- 특징: 대장정에 참가한 혁명 제1세대<br/>- 주요인물: 류사오치(劉少奇), 저우언라이(周恩來), 덩샤오핑(鄧小平), 린바오(林彪)<br/>- 지도이념: 칼 마르크스와 레닌이 확립한 공산주의를 기본으로, 이를 중국 실정에 적용시킨 농민 중심의 혁명<br/>- 주요업적<br/>가. 대약진 운동(1958~1960년 초): 노동 집약 산업의 추진을 통한 경제성장운동. 하지만 현실 조건을 무시한 채 급진적으로 추진하는 바람에 실패로 끝남.<br/>나. 문화대혁명(1966~1976년): 극좌 사회주의운동으로서 이를통해 공산당 내부의 반대파 사람들을 탄압하고 숙청함. 전국 각지에 조직된 홍위병 들로 인해 사회가 경직되었으며, 같은 기간 중국 각지의 많은 전통 문화재들 또한 ‘반혁명’적인 것으로 평가되어 파괴됨.<br/>덩사오핑 시대<br/>(제2세대)<br/><br/>	- 특징: 항일투쟁과 국공내전에 참여한 세대로 주로 문화대혁명 이후 정치무대에 등장<br/>- 주요인물: 자오쯔양(趙紫陽), 후야오방(胡耀邦), 천윈(陣雲)<br/>- 지도이념: 실용주의 노선에 입각한 과감한 개혁 <br/>- 주요업적<br/>가. 공산당이 집권하는 일당 독재의 사회주의 정치 체제 안에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하여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실현. 경제 분야를 중심으로 개혁과 개방 정책을 시행.<br/>나. 일국양제(一国两制): 1997년 반환된 홍콩은 이를 처음으로적용한 사례. 홍콩의 자본주의 체제를 간섭하지 않으며 중국 특유의 시장경제 체제를 형성. <br/>다. 덩샤오핑이 추진한 개혁개방 정책이 중국의 막대한 부존 자원과 결합되면서 중국은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었고, 외국인자본을 대거 유치하면서 ‘세계의 공장’을 위한 경제적 토대를 구축.<br/>장쩌민 시대<br/>(제3세대)<br/><br/>	- 특징: 해외유학을 다녀온 고학력자 중심의 지식인, 사회주의 개조시기 사회 참여<br/>- 주요인물: 리펑(李鵬), 주룽지(朱鎔基), 차오스(喬石)<br/>- 지도이념: 3개 대표론<br/>- 주요업적<br/>가. 3개 대표론: 공산당이 선진 생산력(자본가), 선진 문화발전(지식인), 광대한 인민(노동자와 농민)의 근본 이익을 대표해야 한다는 이론. 이 ‘3개 대표론’은 공산당의 당헌인 당장(黨章)에 삽입되었고 중국의 지도이념으로써 헌법 전문(前文)에 삽입됨. <br/>나. 서부 대개발 사업: 지역 균형 발전정책에 따라 소수민족 자치구를 집중적으로 개발. 빈부 격차의 해결과 서부의 자원 개발이라는 목적 달성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소수민족을 포용해 중국의 분열을 방지.<br/>다. 재임기간 중 1995년 12월 1일 대한민국과 수교.<br/>후진타오 시대<br/>(제4세대)<br/><br/>	- 특징: 국내 정규대학(이공계열)을 졸업한 세대로서 문화대혁명 때 사회 참여, 장기간의 지방재직, 1990년대 중앙진출<br/>- 주요인물: 원자바오(溫家寶), 우방궈(吳邦國), 쩡칭홍(曾慶紅)<br/>- 지도이념: ‘과학적 발전관’을 기반으로 한 조화로운 사회 건설<br/>- 주요업적<br/>가. 과학적 발전관: 경제발전 모델의 전환, 균형적인 발전, 지속 가능한 발전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함. 앞서 본 ‘3개 대표론’에 이어 중국 공산당의 당장(黨章)에 포함됨.<br/>나. 재임 기간 중 중국의 GDP 규모를 세계 2위로 격상. <br/>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<br/>다.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중시하면서도 지역 간, 도농 간 격차 해소 등 ‘조화로운 사회’의 건설에 초점.<br/>시진핑 시대<br/>(제5세대)<br/><br/>	- 특징: 문화혁명 이후 대학에 입학한 40대 후반의 세대, 지방고위 당정경력, 법학이나 경제학 학위 소유자<br/>- 주요인물: 리커창(李克强), 리위안차오(李源潮), 왕이(王毅)<br/>- 지도이념: 부패척결 및 함께 잘 사는 중국 강조<br/>- 주요정책<br/>가. 정치 분야: 형식주의, 관료주의, 향락주의, 사치바람 등 4풍 반대 운동 전개. 중국식 정책 민주화 추진. <br/>나. 사회 분야: 부패척결에 주력. 보시라이 전 충칭시 당서기 재판 처리에 이어 최근 저우유캉 또한 낙마.<br/>다. 경제분야: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위해 단기적 경제후퇴를감수하는 이른바 ‘리코노믹스’를 통해 중국 내수 시장 기능의 확대를 추구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음.]]></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Fri, 03 Mar 2017 13:14:02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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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중국인을 이해하는 열가지 核心</title>
<link>https://insupark.cafe24.com:443/bbs/board.php?bo_table=0102&amp;amp;wr_id=13</link>
<description><![CDATA[중국인은 한마디로 대륙적이다.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이 우리와는 사뭇 다른 점이 많다. 여유만만하고 스케일이 큰 특징이 있는가 하면, 상대방을 의심하고 여간해서는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는다. 또 의외로 축소지향적인 측면도 엿보인다, 과연 중국인은 누구인가 ? 그들의 참모습을 속속들이 파헤쳐본다.<br/><br/>1. 만만디(慢慢的)<br/>&nbsp;<br/>중국사람을 두고 흔히들 「만만디(慢慢的)」라고 부른다. 「느릿느릿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중국사람」하면 먼저 「느리다」는 느낌부터 드는게 사실이다.<br/><br/>약 10여년 전의 일이었다, 모 일간지의 기자가 쓴 기행문을 읽었는데 중국사람들은 워낙 느려서 소나기를 만나도 뛰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후에 알고 보니 중국사람들이 느리기는 해도 그 정도로 느리지는 않았다. 그들도 비가 오자 뛰었다. 아마도 재미있게 표현하기 위해서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br/><br/>중국인들이 느린 것은 사실이다. 물론 나름대로의 배경이 있다. 그것은 그들에게서 보편적으로 볼 수 있는 여유에서 비롯된다, 그들의 여유를 시간과 공간 두 분야로 나눈다면 만만디는 시간적인 여유를 뜻한다. <br/><br/>중국은 넓다. 남북한을 합한 한반도의 약 44배나 되는 땅이다. 넓은 땅에 살다 보니 자연히 국민성도 영향을 받게 되어 서두르지 않는다. 또 서둘러서 될 일도 없다.<br/><br/>옛날에는 인간관계도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았고 교통수단도 발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자기 동네안에서 모든 생활이 이루어졌으며 기껏해야 이웃 동네 밖을 넘지 않았던 것이 그들의 행동반경이었다. 그들에게 백리 길을 간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인공위성을 타고 달라나를 다녀오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다<br/><br/>쓰촨(四川)성에 사는 사람은 평생을 걸어도 바다를 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화교들은 모두가 바다를 끼고 있는 지방 출신들이다. 그런가 하면 우리에게 만주벌판이라고 알려져 있는 동북(東北)평원에 사는 사람은 죽을 때까지 산을 보지 못하고 일생을 마감하기 십상이다.<br/><br/>중국에서도 쓰촨의 나뭇꾼은 여유만만하기로 유명하다. 나무를 해서 살아가는데 우리처럼 시장에 지고 가서 파는게 아니라 아예 땟목으로 만들어서 양쯔(揚子&lt;양자&gt;)강을 타고 상하이(上海&lt;상해&gt;)까지 내려가면서 판다. 무려 5천KM의 대장정에 나서는 것이다. 한 반년쯤 나무를 해서 땟목을 만들며 아예 땟목위에다 집을 짓고 채소까지 심는다. 그뿐인가 ? 닭과 오리도 몇마리 실으면 병아리를 까고, 병아리가 다시 병아리를 깐다. 이 때가 되면 땟목도 얼마 남지 않고, 닭만 잔뜩 불어나 있다. 상하이에 도착하면 이번에는 가족과 함께 걸어서 집으로 돌아온다. 한번의 장정에 족히 3년은 걸린다. 쓰촨의 나뭇꾼이 서두를 필요가 있을까 ?<br/><br/>그래서 「천천히」라는 말은 거의 일상용어가 되어 있다. 여간해서 서두른다거나 재촉하지 않는다. 헤어질 때 나누는 인사가 「만쪼우」(慢走&lt;만주&gt;: 천천히 가세요)이며, 식당에서 요리를 내오면서 하는 말이 「만만츠」(慢慢吃&lt;만만흘&gt;: 천천히 드세요)다. 어쩌다 부탁받은 일을 약속날짜까지 못했으면 상대방은 대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메이 꽌시! 만만라이」(沒關係 慢慢來&lt;몰관계, 만만래&gt;: 괜찮아요. 천천히 하세요). <br/><br/>물론 그들도 경우에 따라서는 서두르기도 한다. 그때 쓰는 말이 「마샹」(馬上&lt;마상&gt;: 측시)이다. 우리말로 「즉시」이기는 하지만 그 어원을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다. 옛날에는 가장 빠른 교통수단이 말(馬&lt;마&gt;)이었다. 「마샹」은 지금 출발하기 위해 말 안장 위에 앉아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언제 더날지도 모르고 또 얼마나 빨리 달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마샹」도 우리가 보기에는「한참 뒤」쯤이 된다.<br/><br/><br/>2. 차 뿌 뚜어 (差不多&lt;차부다&gt;)<br/><br/>일상생활에서 자주 쓰는 말을 통해서도 우리는 그 나라 사람들의 국민성을 알 수 있다. 중국의 경우 그 대표적인 말이 바로 「차뿌뚜어」(差不多&lt;차부다&gt;)다. 아마 그들의 일상용어에서 이 말만큼 자주 사용되는 말도 없을 것이다. 말 뜻은 글자 그대로 「차이가 많지 않다」, 「별 차이 없다」다. 좀더 쉽게 표현한다면 「좋은 게 좋다」는 식의 두리뭉실한 면을 말하는데 바로 중국사람들의 애매모호한 국민성을 잘 나타낸다고 하겠다.<br/><br/>사실 중국사람들의 특징이 행동에서 「만만디」라도 한다면 思考(사고)에서는 「차뿌뚜어」다. 무엇을 평가하거나 어떤 상태, 또는 기분을 나타낼 때 그들은 구체적이고 간단명료하기보다는 함축적이고 포괄적이다. 이것을 모를 때 당황하는 수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보자.<br/><br/>어떤 미술작품을 두고 어떠냐고 물었을 때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거나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을 때 그들은 「차뿌뚜어」라고 말한다. 지금 배가 고프냐고 물었을 때 똑같은 대답을 들었다면 그것은 고프기도 하고 안고프기도 하다는 뜻이다. 사업하는 사람보고 『요즘 재미가 어때요』라고 물었을 때 거의가 「차뿌뚜어」라고 대답한다. 심지어 그들은 한국사람과 중국사람도「차뿌뚜어」라고 말한다.<br/><br/>필자가 국립대만사범대학 석사반을 다닐 때 中國詩學(중국시학)이라는 강좌가 있었다. 할아버지 교수가 강의를 맡고 계셨는데 메주 七言律詩(칠언율시) 한 수를 지어오는 것이 과제 였다. 강의 시작 전에 평가를 받는데, 한참 훑어보시더니 하신다는 말씀이 「차뿌뚜어」였다. 「보통」이라는 뜻이다. 이러다보니「차뿌뚜어」는 듣는 사람에게는 보통 고역이 아니다. 특히 분명한 대답을 원하는 서양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그들의 국민성을 알고 나면 그것처럼 편리한 단어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다음의 경우에 분명한 의사표시를 하고 싶지 않다거나 아니면 판단이 잘 서지 않았을 때 가장 무난하고 훌륭한 대답은 「차뿌뚜어」이기 때문이다.<br/><br/>『오늘 식사 어땠습니까』<br/>『요즘 어떠세요』<br/>『지금 가면 안 늦을까요』<br/>『비싸지 않던가요』<br/>『힘들었지요』<br/>『일주일이면 되겠습니까』<br/>『조금만 더 해 주세요』<br/><br/>중국사람들이 「차뿌뚜어」를 워낙 즐겨 사용하다 보니 유명한 후스(胡適&lt;호적&gt;)가 이를 비판하는 작품을 쓰기도 했다. 「差不多先生&lt;차불다선생&gt;」은 따지기를 싫어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는 늘 말한다.<br/><br/>『세상만사란 차뿌두어면 돼, 뭘 그리 따지고 산단 말인가』<br/><br/>그래서 그에게는 모든 것이 별 차이가 없었다. 「十&lt;십&gt;」자와 「天&lt;천&gt;」자는 한 획 차이뿐이므로 마구 섞어서 썼으며, 흰 설탕과 누런 설탕은 다같은 설탕이므로 차이가 있을 수 없었다.<br/><br/>한번은 上海히(상해)에 가기 위해 기차역에 갔다. 기차는 8시 30분에 출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2분이 늦었기 때문에 기차는 이미 떠나고 없었다. 그는 단2분을 기다려주지 않고 정시에 출발한 기관사를 이해할수 없었다.<br/><br/>『젠장, 30분이나 32분이나 차뿌뚜어인데, 내일 가지 뭐. 오늘 가나 내일 가나 차뿌뚜어 아닌가』<br/><br/>그가 급한 병에 걸려 목숨이 경각에 달리게 되었다. 하인이 불러온 의사는 불행하게도 의사가 아니라 수의사였다. 그래도 그에게는 다 같은 의사였으므로 별 차이가 없었다. 결국 그는 죽게 되었다, 가뿐숨을 몰아쉬면서 말한다.<br/><br/>『하기야 죽는 것과 사는 것도 차뿌뚜어 아닌가』<br/><br/>중국 사름들의 「차뿌뚜어」정신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원만한 성격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우유부단하다는 좋지 못한 평가도 있을 수 있다.<br/><br/><br/>3. 메이 파쯔(沒法子&lt;몰법자&gt;)<br/><br/>살다 보면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는 수가 종종 있다. 이럴 때 중국사람들은 「메이 파쯔」(沒法子&lt;몰법자&gt;)라고 한다. 「도리가 없다」는 뜻이다. 일종의 「체념」이다. 체념 뒤의 심리상태는 대가를 보상받지 못한데 대한 불만이나 원망, 자신의 노력이 부족한 데 대한 한탄과 후회등이 있을 수 있다. 그 다음은 어떤가. 좌절 또는 자포자기가 아니다.<br/><br/>중국 사람들은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인다. 극단적인 방법으로 대항하는 사람은 드물다. 해봐야 도리가 없으니 상황을 인정하고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턱대고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참는 것이다.<br/><br/>중국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참는다(忍&lt;인&gt;)는 말을 자주한다. 무조건 참는 것이 미덕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인내는 신용과 함께 그들이 장사를 하는데 있어 가장 중시했던 덕목 중의 하나였다. <br/><br/>그들의 인내력은 유구한 역사와 배경을 자랑한다. 황허(黃河&lt;황하&gt;)는 중국민족의 발원지이자 문명의 산실이다. 그들은 일찍부터 이곳을 중심으로 황허문명을 꽃피웠다. 따라서 중국사람들의 정신적 육체적인 고향은 황허인 셈이다. 그래서 그들이 가장 숭상하는 색깔도 황색이다.<br/><br/>그러나 황허는 묘하게도 그들에게 문명과 재앙을 동시에 가져다 주었다. 문명이라는 화려한 선물을 준 대신 홍수라는 가혹한 대가도 요구했다. 역사상 황허는 수많은 홍수를 인간에게 안겨주었다. 엄청난 자연의 위력 앞에 인간은 그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온 말이 메이 파쯔다. 도리가 없다는 뜻이다. 몰론 「참는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뜻이다.<br/><br/>인간에게 재앙을 안겨준 것으로 홍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인간 스스로가 만든 이른바 人災(인재)도 있었다. 전쟁이 그것이다. 梁啓超(양계초)의 주장에 의하면 중국에서는 평균 2년반에 1년은 전쟁기간이었다. 인생의 3분의 1이상은 전쟁의 와중에서 살아야 했음을 의미한다. 전쟁 한번 겪지 않고 죽으면 복받은 사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중국의 역사를 「도륙의 역사」리고 했으며 중국사람을 戮民(륙민)이라고 했다. 「도륙에서 살아남은 백성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니 메이 파쯔일 수밖에.<br/><br/>천재와 인재에 시달릴대로 시달리며 살아온 중국사람들과 교제를 하다 보면 「메이 피쯔」란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상대방으로서는 답답하기 그지없다. 특히 우리같은 한국 사람들로서는 억장이 무너진다. 그러나 역시 「메이 파쯔」일 수밖에 없다. 그 말 속에는 「방법이 없으니 참으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br/><br/>그들은 참는 데는 이골이 나 있다. 臥薪嘗膽(와신상담)의 고사는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바다. 보다 큰 목적이 있으므로 참았던 것이다. 그러나 일상생활에서도 웬만한 불편이나 고통쯤은 참는 것으로 해결한다. 좀처럼 그것을 개선한다거나 불평을 토로하지 않는다. 그리고 여간해서는 감정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는다. 철저한 포커 페이스인 셈이다. <br/><br/>외교나 상담을 할 때 중국사람을 만나면 상대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좀처럼 의중을 드러내지 않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인에게 감정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의 감정이 일단 폭발할 때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쉽게 흥분하고 가라 앉히는 우리와는 좀 다르다.<br/><br/>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당나라 代宗(대종)때 차오 은(朝恩&lt;조은&gt;)이라는 환관이 있었는데, 세도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문무백관을 우습게 알았다. 한번은 천자를 모시고 강연을 벌였는데, 강연의 내용을 빗대어 평소 미워하던 대신 세 사람을 공격했다. 천자를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왕진(王晉&lt;왕진&gt;)이라는 신하는 노발대발했다. 그러나 옆에 있던 위엔 짜이(元載&lt;원재&gt;)라는 대신은 그저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강연이 끝나고 차오 은이 중얼 거렸다.<br/><br/>『왜 욕을 듣고도 가만히 있었을까? 아무래도 위엔 짜이란 녀석이 마음에 걸리는데...?』<br/><br/>물론 후에 그는 위엔 짜이에게 죽임을 당했다.<br/><br/><br/>4. 의심과 不信&lt;불신&gt;<br/><br/>흔히들 중국사람하면 신용의 대명사쯤으로 알고 있다. 사실이다. 그들은 신용을 중시한다. 그러나 한번쯤 곱십어 보아야 할 대목이 있다. 과연 가들은 누구나 신용을 잘 지키는 것일까. 그리고 신용을 중시하지 않는 민족도 있단 말인가.<br/><br/>중국은 오래 전부터 신용을 중시해왔다. 孔子(공자)도 신용을 무척이나 강조했다. 심지어 그는 정치를 하는데 있어 위정자는 먹을 것을 충분히 준비하고, 군대를 가져야 하며, 신의를 지키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신의라고 했다. 먹는 것을 「하늘」처럼 여겼던 중국 사람들이었지만 신의를 더 중시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신의는 孝悌忠禮義廉恥 (효제충예의염치)와 함께 인간이 지녀야할 8가지 덕목중의 하나였으며 이중 하나라도 어기는 것을 군자의 커다란 수치로 여겼다.<br/><br/>그러나 좀더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추측할 수 있다. 즉 孔子(공자)가 신의를 강조했다는 것은 당시 사회가 그만큼 신의를 지키지 않았다는 반증이 아닐까. 신의의 반대는 불신이며 그것은 곧 의심을 낳는다. 그래서 신용을 중시했던 만큼 의심도 그만큼 심했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br/><br/>우리 속담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이 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옛날 춘추시대 鄭(정)나라의 武公(무공)은 호시탐탐 옆에 있는 胡(호)나라를 노렸다. 그래서 먼저 자신의 딸을 호왕에게 시집보냈다. 호왕을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다. 과연 호왕은 정나라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침공계획은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br/><br/>한번은 무공이 여러 신하를 모아 놓고 어느 나라를 칠 것인지 물었다. 그러자 꽌치쓰(關基思&lt;관기사&gt;)라는 충신이 호나라를 지목했다. 무왕은 사돈 나라를 어떻게 칠 수 있느나며 그를 죽이고 말았다. 그래서 호왕은 더욱 정나라를 믿고 안심했다. 결국 무왕은 호나라를 멸망시키고 말았다.<br/><br/>역시 춘추시대 宋(송)나라에서 있었던 이야기다. 비가 와서 어느 부자의 담이 무너지고 말았다. 아들은 빨리 담을 쌓지 않으면 도둑이 들 것이라고 말했다. 똑같은 말을 옆집의 영감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밤 정말로 도둑이 들었다. 그러자 그 부자는 자기의 아들은 선견지명이 있다고 칭찬한 반면, 옆집 영감은 도둑으로 잔뜩 의심했다.<br/><br/>성실하게 살아가는 일반 백성들은 어떤가. 열심히 농사를 지어 놓으면 천재지변이 일어 쓸어가 버린다. 다행히 이를 면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나면 이번에는 가혹한 관리의 수탈이 기다리고 있다. 믿을 것은 하늘도 사람도 아니었던 것이다.<br/><br/>최초로 중국의 통일한 천자는 泰始皇(태시황)이었다. 이제 중국은 그의 수중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그 위업은 거저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피를 흘린 대가가 아니었던가. 어렵게 쥔 천하를 누군들 쉽게 내놓고 싶겠는가. 천년 만년 지키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자니 믿을 구석이 있어야 하는데 자식도 못 믿을 판이니 그것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천자치고 높은 베개 베고 편안하게 잘 수 있었던 사람은 많지 않았다.<br/><br/>신하는 어떤가. 천자의 총애를 다투다 보니 자연히 아첨과 시기가 뒤따랐다. 몰론 현명한 천자라면 시비곡직을 가릴 줄 알아야겠으나 역사상 그런 천자는 놀아나는 많지 않았다. 오히려 신하들의 농간에 놀아나는 천자가 더 많았으며, 심하면 일부러 농간을 부추겨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는데 이용하게도 했다. 그러니 신하들도 잔뜩 의심할 수 밖에.<br/><br/>통치자 계층에서 있었던 의심의 상징이 인질이다. 서로의 약속을 믿지 못해 사람까지 담보물로 삼았지만 그렇다고 신의를 꼭 지킨 것을 결코 아니었다. 정권을 위해서는 자신의 혈육도 희생물로 삼았던 경우가 많았다. <br/><br/>의심 또는 불신의 극치는 뭐니뭐니 해도 宦宮(환궁)이 아닌가 싶다. 궁중에는 많은 궁녀들이 있다. 그러나 남자도 있어야 했으므로 자연히 「일(?)」이 없을 수가 없었다. 특히 여인들이 아름답고 보니 그런 일은 다반사였다. 그러니 의심이 생길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사건의 재방을 根絶(근절)시켜야 했는데 방법은 글자 그대로 「뿌리채 뽑아 버리는」수밖에 없었다.<br/><br/>앞에 든 사례들은 대부분 이미 없어진지 오래다. 그러나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있다. 도장이 그것이다. 옛날 공문서를 보낼 때 문서수발병이 행여나 내용을 뜯어볼까 「의심」스러워 사용했던 것이 도장인데 요즘도 일상생활에서 사용하고 있는 이같은 관습은 우리에게도 전해져, 서양사람들이 간편하게 사인을 하는 반면 우리는 반드시 도장을 찍어야 믿는다. 그것도 부족하여 인감도장이 나왔다. 모두 불신의 상징인 것이다.<br/><br/>비행기 기내에서 만난 한 중국인 사업가의 말이 생각난다.<br/><br/>『같은 중국사람이지만 여러 가지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대만 사람은 그래도 좀 단순한 반면 대륙 사람은 음흉하고, 홍콩에 있는 중국 사람들은 사기꾼이에요. 싱가포르 사람들은 훈련은 잘 되어 있지만 예리하지요』<br/><br/>&nbsp;<br/>5. 현실(실속)과 미엔쯔(面子&lt;면자&gt;)<br/><br/>중국사람들은 매우 현실적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현실을 중시하는 민족이다. 중국인들은 콩쯔(孔子&lt;공자&gt;)라면 위대한 사상가이자 교육자로서 지성으로 추앙하는데 이들의 현실중시 경향은 그의 영향을 받았다. <br/><br/>선뜻 이해가 가지 않을 지도 모른다. 우리는 흔히들 콩쯔는 케케묵은 문자나 즐겨 사용하며 예의니 효도니 따위의 말만 하는 「고리타분한」존재쯤으로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는 귀신이니 도깨비등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일체 언급조차 하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하늘」이니 「죽음」까지도 논하려 들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것은 곧 「비현실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가 강조한 모든 것들은 현실과 밀착된 것들, 예들 들어 교욱, 부모 섬기기, 수양하기, 음악듣기, 교제하기 등등이었다.<br/><br/>사실이지 고리타분한 존재는 콩쯔나 멍쯔(孟子&lt;맹자&gt;)가 아니라 라오쯔(老子&lt;노자&gt;)나 쫭쯔(莊子&lt;장자&gt;)인 셈이다. 그들의 글을 보면 얼마나 황당무계한지 쉽게 드러난다.<br/><br/>『道(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도가 아니며 이름 붙일 수 있는 이름은 이름이 아니다』<br/><br/>『북쪽 바다에 곤(鯤&lt;곤&gt;)이라는 물고기가 이쓴ㄴ데 그 크기는 수천리가 넘는다』<br/><br/>라오쯔와 쫭쯔의 말이다. 무슨 뜻인지 아직도 이해가 잘 가지 않는다. 이 얼마나 뜬 구름잡는 소리인가?<br/><br/>중국은 땅이 넓고 사람이 많아서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신화의 재료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신화가 거의 발달하지 못했으며, 또 신화를 바탕으로 발달하는 소설도 덩달아 찬밥 신세를 면치 못했다. 신화나 소설은 모두가 「허구」를 바탕으로 하는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콩쯔가 배척했기 때문이다.<br/><br/>그러다 보니 현실을 중시하는 중국사람들에게는 먹는 것이야말로 「하늘」과 같은 존재였으며 모든 것은 먹는 문제로 귀착되었다. 훌륭한 통지자란 민주정치를 실시했던 천자가 아니라 먹게 해줄 수 있는 천자를 말했다. 중국사람들이 역시 「하늘」처럼 떠받드는 堯(요)임금과 舜(순)임금도 민주정치를 해서가 아니라 백성들로 하여금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사람들은 천지와 인간을 창조했다는 신보다 堯舜(요순)임금을 훨씬 더 존경한다. 우리가 단군할아버지를 숭배하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br/><br/>중국에서 먹는 것을 완전하게 해결한 것은 1949년 중국에 공산정권이 들어서고 나서의 일이므로 불과 얼마 전의 일이다. 그동안 「조용」했던 것은 이념의 문제도 있겠지만 기본적인 「현실문제」를 해결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점을 누구보다도 잘 간파했던 마오 쩌 뚱(毛澤東&lt;모택둥&gt;)의 통치력이 뒷받침된 것이다<br/>&nbsp;<br/>중국사람들의 현실중시경향은 쉽게 드러난다. 복잡한 형식이나 겉치레를 싫어하며 내용을 중시한다. 그들이 지내는 제사를 보면 절차가 우리보다 훨씬 단순하다.「겉보다는 실속」인 것이다. 마오 쩌 뚱이나 쪼우은라이(周恩來&lt;주은래&gt;), 떵샤오핑(鄧小平&lt;등소평&gt;)이 양복입은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그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br/><br/><br/>『麻雀雖小(마작소소), 五臟俱全(오장구전)』(참새가 작아도 오장은 있다)<br/><br/>그들에게는 있고 없음이 중요하지 어떤 것이 있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요즘 불고 있는 이른바 「실용주의」라는 것도 그들에게는 결코 새로운 용어가 아니다. 과거 몇십년 동안 현실보다 이데올로기를 앞세웠던 데 대한 일종의 반대용어일 뿐이다. 등소평의 실용주의노선은 드래서 보다 더 중국적인지도 모른다.<br/><br/>중국사람들은 체면을 중시한다. 그래서 『중국의 성격』이라는 책을 쓴 바 있는 영국의 전도사 아담 스미스는 중국사람을 이해하는 관건으로 체면을 들었으며, 린위탕(林語堂&lt;임어당&gt;)같은 이는 『내 나라네 국민』(吾國與吾民&lt;오국여오민&gt;)에서 중국을 지배하는 세 여신으로 체면, 운명, 은전(恩典&lt;은전&gt;)의 여신을 들었는데, 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체면의 여신이라고 했다.<br/><br/>중국의 문화를 주도해온 사상은 콩쯔로 대표되는 유가였다. 그런데 유가는 앞에서도 언급한 것처럼 현실을 중시한다. 그래서 내세가 없다. 그러다 보니 문제가 생겼다.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 두려움을 느끼게 마련인데, 불교처럼 내세를 앞세우면 인심을 모을 수도 있으련만 유가에서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했다. <br/><br/>바로 그 대안으로 제시된 게 「이름을 남기는 것」이다. 그러면 육신은 죽되 정신을 죽지 않는다고 보았다. 열심히 공부하여 자신의 이름은 물론 조상의 이름까지 드날리는 것(立身揚名&lt;입신양명&gt;)이야말로 효의 극치라고 했다. 명분이니 명예라는 말은 그레서 나왔다.<br/><br/>그런데 名(명)은 다분히 정신적인 이름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육신을 나타내는 이름은 무엇일까 ? 그것은 바로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는 얼굴이다. 곧 얼굴은 육신의 실질적인 이름인 것이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얼굴도 명예와 함께 중시했다.<br/><br/>「경을 친다」는 말이 있다. 경(경&lt;경&gt;)이란 이마에 먹물을 들이는 형벌로 참형 다음 가는 중형이다. 평생 얼굴을 들 수 없게 하는 형벌이었던 것이다.<br/><br/>또 厚顔無恥(후안무치)라는 말도 있다. 얼굴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해 체면을 닦지 못한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서, 실제로 중국에서는 그런 사람에게 얼굴가죽을 벗기는 형벌을 가했다. 너무 두꺼웠기 때문이다. 이처럼 얼굴은 육신의 상징으로 중시되었다. 우리나 중국이나 지금도 경찰에 체포된 범인이 얼굴부터 가리는 것도 이런 데서 연유한 것이다.<br/><br/>체면을 중국어로 미엔쯔(面子&lt;면자&gt;)라고 한다. 곧 얼굴이라는 뜻이다. 워낙 미엔쯔를 중시했던 민족이었던 만큼 체면 때문에 죽음을 자청했던 경우도 많다. 周(주)나라가 서자 불사이군을 외치면서 수양산에 들어가 굶어 죽기를 자청했던 뽀이(伯夷&lt;백이&gt;)와 수치(叔齊&lt;숙제&gt;)도 사실은 체면 때문이었으며, 료 우빵&lt;劉邦&lt;유방&gt;)에게 패주를 거듭하던 샹위(項羽&lt;항우&gt;)도 도망치면 목숨만은 부지할 수가 있었지만 체면 때문에 烏江(오강)을 건너기를 거부하고 자결을 선택했다. 『내가 무슨 면목으로 건넌단 말인가』.<br/><br/>總理衙門(총리아문)이라면 청나라때 외교를 담당했던 기관으로 지금의 외무부에 해당된다. 당시는 서구 열강들이 중국을 마음껏 유린하던 때였다. 서영사름들은 걸핏하면 총리아문을 안방 드나들 듯하면서 자신들의 요구를 주장했다. 서양사름들이 이 곳을 출입할 때 재미있는 광경이 벌어지곤 했다.<br/><br/>즉 잔뜩 거드름을 피우면서 보무도 당당하게 정문을 통해 들어간다. 정문은 곧 체면의 상징이기 때문에 그렇게 함으로써 중국사람들의 기세를 꺾어 놓는다. 그러나 나중에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고 나갈 때는 슬그머니 옆문을 이용했다. 구겨진 중국사람들의 체면을 다시 세워주기 위해서였다.<br/><br/>체면중시 풍조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실제로 중국에서 체면과 관계되는 말은 무척 많다. 우선 체면 차리는 것을 쭈오 미엔쯔(做面子&lt;주면자&gt;), 남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을 께이 미엔쯔(給面子&lt;급면자&gt;), 제 삼자의 체면을 봐서 부탁을 들어주는 것을 마이 미엔쯔(賣面子&lt;매면자&gt;)라고 한다. 「체면을 팔았다」는 뜻이다.<br/><br/>그뿐인가, 체면이 선 상태를 요구 미엔쯔(有面子&lt;유면자&gt;), 깍인 상태를 메이 미엔쯔(沒面子&lt;몰면자&gt;), 자신의 체면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쯩 미엔쯔(爭面子&lt;쟁면자&gt;), 이상의 것들은 집대성한 것을 미엔쯔 꽁푸(面子工夫&lt;면자공부&gt;)라고 한다. 일종을 「체면학」인 셈이다. 중국사람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바로 이 「미엔쯔 꽁푸」에 밝아야 한다.<br/><br/>그러면 중국사람들은 「체면」과 「현실」중 어느 것을 더 중시하는가. 이 두가지는 보완적이기보다는 상충되는 경우가 더 많다. 너무 체면만 차리다가는 현실의 이익을 놓치기 쉽다. 중국사람들은 양자가 상충될 때 「현실」쪽을 택한다. 즉 양자를 면밀히 검토하여 유리하다는 판단이 서면 체면도 버릴 줄 아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래서 상대가 아무리 의연하게 대처해도 전후좌우를 따져 유리하다고 생각되면 얼마든지 숙이고 들어오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br/><br/>지난 1983년 5월 5일, 중국 민항기사건이 발생했다. 수명의 납치범에 의해 중국의 민항기가 우리의 춘천 비행장에 불시착한 것이었다. 유사 이래 처음 경험하는 우리로서는 이 엄청난 사건에 전국이 놀랐지만 사실 우리보다 더 놀랐던 것은 중국이었다. 그들은 다급했던 나머지 민항국장 沈圖(심도) 일행의 방한을 요청해왔다. 이때 중국외교부는 사상 최초로 우리나라를 대한만국(Repubulic of Korea)이라고 정식으로 호칭했다. 목전의 이익을 앞두고 체면을 따질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br/><br/>당시 도하 각 매스컴들은 흥분한 나머지 금방 한.중간에 무슨 변화라도 있을 것처럼 보도했다. 그러나 양국이 국교정상화를 이룬 것은 그로부터 만 9년 3개월이라는 시간이 더 흐른 뒤였다.<br/><br/><br/>6. 꽌시(關係)와 메이 꽌시(沒關係)<br/><br/>중국어로 관계를 「관시」關係(관계)라고 하는데, 우리의 「빽」(background)과 비슷한 뜻을 지니고 있다. 중국사람들의 관계중시는 가히 알아줄 만하다. 그들은 열심히 일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지만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관계라고 본다. 그래서 관계를 가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그것을 까오 꽌시(고關係&lt;고관계&gt;)또는 라 꽌시(拉關係&lt;납관계&gt;)라고 하는데, 「관계를 얽는다」고 보면 무방하다.<br/><br/>이렇게 하여 관계가 얽혀진 상황이 꽌시왕(關係網&lt;관계망&gt;)인데, 마치 거미줄처럼 망을 형성해 두고 있으면 여러 가지로 편리하다. 유사시 꽌시 왕을 동원하는 것을 카오 꽌시(고關係&lt;고관계&gt;), 또는 판 꽌시(攀關係&lt;반관계&gt;)라고 한다. 이는 「관계를 타다」, 또는 「빽을 동원한다」는 의미다.<br/><br/>이처럼 관계를 중시하다 보니 사람을 평가할 때 상대방의 능력보다는 꽌시가 우선하는 경우가 있다. 즉 그가 누구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슨 사람인가가 더 위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럴 때 그들은 「중보다 부처를 보아서」라고 표현한다. 그 사람의 빽을 더 중시한다는 것이다.<br/><br/>필자가 공부했던 대만의 경우, 입학원서에는 반드시 추천서가 필요한데 그 위력이 대단하다. 즉 든든한 인사의 추천서라면 입학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이 점은 중국 대륙도 마찬가지다. 평소 잘 아는 인사 한분이 사업차 중국을 자주 왕래하게 되었다. 세관에서 검사가 워낙 까다로와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높은 고관을 알고부터는 무사 통과였다는 것이다.<br/><br/>꽌시를 맺어 놓은 상대를 꽌시 후(關係戶&lt;관계호&gt;)라고 한다. 중국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꽌시 후를 알아 둘 필요가 있다. 다음의 기록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br/><br/>『공장을 하나 새우려면 수많은 기관과 관계를 맺어 놓아야 한다. 심지어는 주위의 生産隊(생산대)까지도 그렇다. 만약 그들이 열번 요구했을 때 한번이라도 거절했다가는 커다란 난관에 봉착하고 말 것이다. 예를 들어 변전소에서 어떤 요구가 들오왔다고 하자. 만약 당신이 그 요구를 거절한다면 당신은 정전을 당하고 말 것이다』(1980년 11워 15일자「人民日報(인민일보)」)<br/><br/>꽌시 왕 치고 좀 특수한 꽌시가 있다. 중국사람들은 인위적인 혈연관계 즉, 수양관계를 매우 좋아한다. 여기에는 수직관계와 수평관계가 있다.<br/><br/>수직관계에는 깐(乾&lt;건&gt;)이라는 말이 덧붙여지는데 그것은 「건조하다」는 뜻이다. 흔히 우리가 술좌석에서 자주 사용하는 「건배」(乾杯&lt;건배&gt;: 깐 빠이)라는 말은 바로 「술잔을 말린다」는 뜻으로 「잔을 비운다」는 의미다.<br/><br/>수직관계에서 「깐」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피가 섞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래서 수양 아버지면 깐빠(乾파&lt;건파&gt;), 어머니면 깐마(乾마&lt;건마&gt;), 아들을 깐 얼쯔(乾兒子&lt;건아자&gt;), 딸이면 깐 뉘얼(乾女兒&lt;건여아&gt;)이라고 한다. 현재 중국의 총리인 李鵬(이붕)이 主恩來(주은래)의 깐얼쯔임은 다 아는 사실이다. <br/><br/>수평관계는 바로 의형제를 맺는 것이다. 『삼국지』를 읽은 사람이면 누구나 桃園結義(도원결의)를 기억할 것이다.<br/><br/>일단 關係網(관계망)에 든 사람은 「내 사람」이 된다. 그래서 모든 친절을 다 베푼다. 그러나 「내 사람」이 아니면 「남」이 된다. 그들은 남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관심하다. 이처럼 중국사람들에게는 내 사람과 남의 구별이 강하다.<br/><br/>중국어에 재미있는 표현이 있다. 메이 꽌시(沒關係&lt;몰관계&gt;)가 그것이다. 우리말로 하면 「괜찮다」가 된다. 그런데 이 말의 글자를 풀어 보면 「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나하고는 관계가 없으므로 괜찮은 것이다.<br/><br/>또 남의 일에 참견을 할라 치면 샤오 꽌시엔스(少關閑事&lt;소관한사&gt;)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한다. 「괜히 쓸데 없는 일에 관계하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인데 「당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뜻이다.<br/><br/><br/><br/>7. 중용과 조화<br/><br/>중국사람들은 중용을 통한 조화를 중시한다. 중용이란 무엇인가. 흔히들 우리는 가운데를 취한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중용에는 보다 중요한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br/><br/>예를 들어 숫자 10을 놓고 보자. 단순히 가운데를 취한다면 5가 바로 중용의 숫자가 된다. 그러나 중용이란 그런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중국사람들이 배격하는 숫자가 될 수도 있다.<br/><br/>보다 중용에 가까운 숫자는 1과 10 두 개일 수도 있고 4,5,6이 될 수도 있으며 아니면 1에서 10까지 모두가 될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중용이란 수학적 물리적인 의미가 아니라 철학적 화학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굳이 우리말로 쉽게 표현한다면 「모자라지도 않고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은 상태」, 즉 過猶不及(과유부급)의 상태가 바로 중용인 것이다.<br/><br/>그러면 조화는 또 무엇인가. 두 개의 극단을 동시에 취함으로써 중용의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노력이 아닐까 싶다. 중국사람들은 극단적인 것을 싫어한다. 일도양단이라는 말은 마치 칼로 두부 모를 자르듯이 단칼에 결판내는 것을 말하는데 그들은 이런 것을 아주 싫어한다.<br/><br/>그래서 극단을 배격하며, 굳이 취하라면 차라리 양단을 동시에 추구한다. 그것이 곧 조화다. 중국 사람들이 즐겨 말하는 음양사상은 조화의 좋은 예이며 그들의 옛 건축믈을 보면 거의가 좌우대칭형이다. 어느 한 곳만을 치중하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br/><br/>여러 사람들이 모인 단체에 참석해보면 중국인 특유의 조화를 느낄 수 있다. 중국 사람들은 좀처럼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의견이 없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들은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기보다는 그것을 타인과 조화시키기에 더 노력한다. 그들이 흔히 하는 속담에 「사람 보면 사람 말을, 귀신 보면 귀신 말을 한다」(見人說人語&lt;견인설인어&gt;, 見鬼說鬼語&lt;견귀설귀어&gt;)라는 말이 있다. 적응과 조화를 의미한다.<br/><br/>그러다 보니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고, 주장에 모순이 있을 수도 있다. 이것을 口是心非(구시심비)라고 한다. 「입과 마음이 따로 논다」는 뜻이다. 우리말로 하면 음흉한 셈인데 그들은 음흉해서 오는 폐단보다는 남과 조화하지 않은 데는 오는 불화를 더 경계한다. 중국사람들에게 있어 조화의 대상은 인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그들은 의술과 약학, 음식까지 조화시키기 위해 노력한다.<br/><br/>그런데 보다 재미있는 것은 자연과의 조화다. 그들에게 있어 자연은 늘 경외스러운 존재였다. 따라서 자연은 숭배와 함께 조화의 대상일 뿐이지 서양사람들처험 연구한다거나 나아가 정복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에베레스트를 자국 경내에 두고 있는 그들이지만 그것을 최초로 정복한 사람은 중국사람이 아니라 영국사람이었다. 1986년에 와서야 비로소 에베레스트에 중국인이 올랐다.<br/><br/>그러다 보니 인간과 자연간에는 엄격한 주종관계가 성립한다. 물론 主9주)는 자연이고 인간은 그 부속물에 불과하다. 이 점은 동양화를 보면 쉽게 드러난다. 산천등 자연은 크게 처리하고 있는 반면 인간은 늘 조그마한 한 점, 도는 한 획으로 처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들은 늘 자연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것이 바로 天人合一說(천인합일설)이며 그 중의 하나가 풍수지리설이다.<br/><br/><br/>8. 商人(상인) 기질<br/><br/>흔히들 중국사람들은 장사에 뛰어나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화교들을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사실이지 그들의 장사기질은 경재대국을 이룩한 일본인들도 인정하는 바다. 여기에는 그럴만한 배경이 있다. 장사를 하는 사람을 商人(상인)이라고 하는데 원래 뜻은 「商(상)나라 사람」이다. 商(상)나라는 우리에게 殷(은)나라로 더 잘 알려져 있는데, 후에 周(주)나라에 의해 망한다. 앞서 말한 伯夷(백이) 叔薺(숙제)는 바로 상나라 말기 때의 사람이다.<br/><br/>武王(무왕)이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새운 것은 기원전 1,111년이었다. 나라가 망하고 전답을 몰수당한 은나라 백성들은 정든 고향을 떠나 사방으로 흩어졌다. 아무런 생산기반이 없었으므로 그들은 장사로 연명해야 했다. 商人(상인)이라는 말은 여기서 나온 것이다. 그러니까 상인의 등장은 지금부터 3천년이 넘는 셈이다. 다시 말해 중국 사람들은 3천년 전부터 상업에 종사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br/><br/>춘추전국시대라면 극도의 혼란기이다. 중원은 온통 제후들의 땅 빼앗기 싸움으로 전쟁의 도가니에 빠지고 말았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민생은 도탄에 빠졌지만 묘하게도 사상과 상업만큼은 크게 성행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이른바 諸子百家(제자백가)와 재별의 출현으로 나타난다.<br/><br/>정경유착은 지금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 점은 당시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재벌이 출현하였으며 콩쯔같은 성인도 돈많았던 제자 쯔꽁(子貢&lt;자공&gt;)이 있었기에 이름을 날릴 수 있었다. 자연히 황금만능주의가 풍미했다. 당시 정치재벌의 대표는 단연 뤼 뿌 웨이(呂不韋&lt;여불위&gt;)를 들 수 있는데 요즘의 재벌은 땅투기를 즐겨하지만 그는 놀랍게도 사람, 즉 천자의 자리를 투기의 대상으로 삼았다.<br/><br/>그는 예리한 투자안목으로 쯔추(子楚&lt;자초&gt;)라고 하는 진나라의 왕자에게 자신의 애첩을 바쳤다. 그녀는 이미 임신중이었다. 얼마안 있어 아들을 낳으니 이가 훗날의 진시황이다. 그러니까 진시황은 뤼 뿌 웨이의 아들인 셈이다. 이렇게 본다면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사람은 진시황이지만 그것을 가능케 했던 것은 상인, 즉 재별의 힘이 아니었을까.<br/><br/>중국은 땅이 넓다. 그러다 보니 장단점이 동시에 있다. 半寒帶&lt;반한대&gt;부터 열대까지 있어 생산되지 않는 물건이 없는 것은 좋은데 워낙 넓다 보니 이것을 각지로 실어 나르는 일이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br/><br/>그래서 중국사람들은 예로부터 없는 것(無有&lt;무유&gt;)이 두려운게 아니라 고르지 못한 것(不均&lt;불균&gt;)이 두렵다고 했다. 고르게 하는 것, 그것은 요즘말로 유통이며 그것을 담당한 사람은 다름 아닌 상인이었다.<br/><br/>이밖에도 중국에서 상업이 발달하지 않을 수 없었던 배경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사람들은 일찍부터 장사에 눈을 뜰 수 있었으며 그들의 재능은 현재 세계 각지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현재 중국대륙의 상업은 우리에게 뒤져 있지만 그것은 재능이 없어서가 아니라 뛰어난 재능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다.<br/><br/>중국인들은 곰에다 비유할 수 있다. 곰은 미련한 동물같지만 물고기를 잡는 데는 수달 못지 않은 민접함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곰은 훈련만 시키면 재주까지 부릴 줄아는 영특한 동물이기도 하다. 즉 곰에게는 잠재력이 있는 것이다. 현재의 중국인은 이제 각 동면에서 깨어난, 훈련을 거치지 않은 곰이다. 현재의 중국인은 이제 갓 동면에서 깨어난, 훈련을 거치지 않은 곰이다. 따뜻한 봄이 되고 정신 훈련과정을 거칠 때 그 곰은 무서운 잠재력을 발휘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는 같은 중국사람인 홍콩과 싱가포르, 대만 등에서 익히 알 수 있다.<br/><br/>&nbsp;<br/>9. 금전관과 계산감각<br/><br/>중국사람들의 상업기질을 뒷받침해 주고 있는 것이 그들 특유의 금전관과 계산감각이다. 하기야 상업의 궁극적인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다. 돈을 좋아하지 않는 민족은 없다. 그러나 돈에 대한 중국사람들의 애착은 그 정도가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는다.<br/><br/>예를 들어보자. 화교들은 장사에 뛰어나 돈을 많이 버는데 일단 돈이 수중에 들어가면 나올 줄을 모른다고 한다. 돈이 늘어나면 이제는 의심이 많아 방바닥을 파낸 다음 묻어둔다는 것이다. 물론 과정이 섞인 이야기겠지만 그들이 돈을 중시하는 일면을 말할 것이라 하겠다.<br/><br/>중국사람들이 돈을 중시하는 풍조는 일상생활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국민학교에 다니는 아들은 등교하기 전에 가게에 나가 일을 거든다. 물론 책가방은 한쪽 구석에 놓아둔 채 일을 한다. 부모도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br/><br/>「돈을 버는 것」을 중국어로 「쫜치엔」(잠錢&lt;잠전&gt;)이라고 하는데 대화중에 쉽게 들을 수 있다. 심지어는 강의중인 교수도 돈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낸다. 돈은 필요 불가결한 것이지만 점잖은 신분에 가급적이면 입에 올리지 않으려는 우리와는 다르다.<br/><br/>중국에서 구정만큼 큰 명절은 없다. 왁자지껄하고 요란하다. 설날에 우리들이 즐겨 하는 덕담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이다. 중국사람들은 그게 아니다. 「꽁시 파 차이」(恭禧發財&lt;공희발재&gt;): 돈 많이 버십시오)다.<br/><br/>중국사람들은 수많은 신을 섬긴다. 아마도 그들만큼 다양한 신이 있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우리가 보는 모든 것에 신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상신은 물론 땅의 신, 집의 신, 화장실 신, 대문 신, 심지어는 부뚜막의 신도 있다. 이런 형편인데 돈의 신이(錢神&lt;전신&gt;)이 있으며 그보다 한 수 높은 재신(財神&lt;재신&gt;)도 있다. 각종 재산을 담당하는 신인 셈이다.<br/><br/>중국인들이 돈에 대해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사실 그들만큼 전쟁과 재앙을 많이 겪은 민족도 드물 것이다. 오죽했으면 량 치 차오(梁啓超&lt;양계초&gt;)가 戮民(육민)이라고 했을까.<br/><br/>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국이 불안하면 금값이 폭등한다. 전쟁이든 재앙이든 가장 안전한 피난처는 금(돈)밖에 없다. 외양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는 한 원인이 되기도 한다.<br/><br/>그런데 돈에 대한 이같은 인식은 정확한 계산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다. 놀랍게도 중국인들은 계산관념에 있어서도 가히 세계 제일이다. 무려 2천6백년전부터, 그러니까 공자시대 이전부터 수학은 군자가 익혀야 할 기본과목으로 되어 있었으며, 원주율 3.14를 계산해낸 것은 무려 1천 8백여년전의 일이다.<br/><br/>계산을 중국어로 「쏸」(算&lt;산&gt;)이라고 한다. 꿍꿍이 속을 신쏸(心算&lt;심산&gt;)이라고 하며, 쏸러(算了&lt;산요&gt;) 하면 「계산이 완료된 것」으로서 관계가 끝난 상태를 말한다. 심지어 그들은 점을 보는 것도 계산하는 것으로 여겨 쏸밍(算命&lt;산명&gt;)이라고 하는데 직역하면 「운명을 계산한다」는 뜻이 된다. 그들에게는 운명조차도 「계산」의 대상이 되는 셈이다.<br/><br/>계산하는데 필요한 주산을 쏸판(算盤&lt;산반&gt;)이라고 하는데, 기록에 의하면 원나라 이전부터 사용했다고 하니까 7백년은 족히 된셈이다. 계산기가 발달한 지금도 주산은 여전히 애용되고 있다.<br/><br/>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어린아이의 돌잔치다. 상을 푸짐하게 차리는 것은 우리와 같다. 그러나 우리가 보통 돈과 연필, 그리고 실을 잔치상에 올리는 데에 비해 그들은 붓과 함께 주산을 올려 놓는다.<br/><br/><br/>10. 거대한 스케일과 축소지향<br/><br/>白髮三千才(백발삼천재)」리 타이 빠이(李太白&lt;이태백&gt;)가 우연히 거울 앞에 섰다가 호호백발이 다 된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 놀라 한 말이다.<br/><br/>옛날 楚(초)나라에는 이상한 나무가 많았다. 그중 冥靈(명영)이라고 하는 나무는 5백년을 봄, 5백년을 가을로 삼는다. 또한 大椿(대춘)이라고 하는 나무는 무려 8천년을 봄으로 삼는다. 『莊子(장자)』에 나오는 말이다.<br/><br/>중국에서 천지를 개벽한 사람은 판꾸(盤古&lt;반고&gt;)다. 그는 두 팔로 하늘을 떠받치고 서있었는데 키가 하루에 한 길씩 자랐다고 한다. 그리하여 1만 8천년이 지나자 그의 키도 그만큼 커졌고 덩달아 하늘도 아득히 놓아지게 되었다. 중국의 신화에 나오는 말이다.<br/><br/>이래저래 우리에게 중국사람들은 「거대한」사람들, 「스케일이 큰」 사람들로 여겨졌다. 그들의 커다란 스케일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경우는 많다. 만리장성은 동쪽 발해만의 山海關(산해관)에서 출발하여 서쪽 감숙성의 嘉욕關(가욕관)까지 장장 6천km나 뻗어 있다. 그러므로 사실은 만오천리 장성인 셈이다. 달에서 보이는 인류의 유일한 건축물이라는 표현이 실감난다.<br/><br/>북경 천안문 광장의 뒤에 위치해 있는 것이 紫禁城(자금성)이다. 明(명),淸(청) 양대 天子(천자)가 살던 살림집인 셈인데 무려 17년에 걸쳐 지었다. 둘레가 6km에 무려 9천門(문)이 넘는 방으로 되어 있다.<br/><br/>그들의 스케일은 토목과 건축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永樂大典(영락대전)』이라면 명나라 成祖(성조)때 편찬된 일종의 백과사전인데 학자 2천명을 동원하여 6년동안 썼다. 총 2만2천8백77권에 3억7천만자가 수록되어 있다. 청나라 전성기 때의 천자였던 高宗&lt;고종&gt;(연호는 乾隆&lt;건륭&gt;)은 한 수 더 떠서 『四庫全書(사고전서)』를 편찬했는데 17년동안 4천2백명을 동원하여 총 17만2천6백26권의 책을 만들었다.<br/><br/>그러나 그것도 부족했던지 도합 7질이나 만들었다. 『永樂大典(영락대전)』의 자수는 그래도 셀 수가 있었다. 그러나 『四庫全書(사고전서)』는 그게 불가능하다. 그래서 정확한 자수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세계 최대의 서적인 것만 알 수 있을 뿐이다.<br/>&nbsp;<br/>넓은 땅, 오랜 역사, 그리고 다영한 자연환경, 거기에다 많은 사람, 이런 것들이 중국을 특징지을 수 있는 말들이다. 인간의 성품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자연환경이다. 끝없는 평원, 바다같은 호수를 접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성은 자연히 광대무변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산의 정상에 섰을 때 가슴이 확 트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런 사람들의 흉금은 대체로 확대지향적이다.<br/><br/>그렇다고 중국 사람들이 거대한 스케일만 즐겼느냐 하면 그렇지 않다. 놀랍게도 그들이 국민성 중에는 축소지향의 일면도 있다. 「大中有小(대중유소), 小中有大(소중유대)」라는 말이 있다. 「큰 가운데 작은 것이 있고 작은 가운데 큰 것이 있다」해석하면 되겠다. 莊子(장자)의 구름잡는 이야기 같지만 이를 인정한다면 큰 것이 작은 것이고 작은 것이 곧 큰 것이라는 뜻도 된다.<br/><br/>다시 말해 큰 것과 작은 것에는 대소의 구별이 없다는 이야기다. 그러니 얼마든지 작아도 그들은 크게 여길 수가 있는 것이다. 옛날 한나라 때의 費長房(비장방)과 같은 도사는 호로병 속에서 새로운 천지를 맛보았으며 四川(사천) 지방의 成都(성도)에서 나는 이상한 귤속에는 두 도사가 태연하게 바둑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물론 이야기속에 나오는 말이다.<br/><br/>그러면 실제로 작은 것은 없는가. 많다. 대만의 국립 고궁박물관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유물중의 하나로 橄欖劾舟(감람핵주)라는 것이다 있다. 청나라의 조각가가 올리브 열매에다 蘇東坡(소동파)가 쓴 「적벽가」를 조각한 것인데 길이 3.4cm, 높이 1.6cm 의 배모양을 하고 있다. 그 속에 여덟 사람이 앉아 있고 양쪽에 모두 8개의 문이 달려 있는데 지금도 자유롭게 열리도 닫힌다.<br/><br/>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배 밑바닥에다 「적벽가」전문 3백 57자를 새겨 놓았다는 점이다. 또한 多層球(다층구)라는 것도 있는데 상아를 깎아 큰 공을 만든 것으로 그 공속에 도합 16개의 공이 층층이 있어 각기 따로 움직인다.<br/><br/>현실생활에도 작은 것은 많다. 그들의 찻잔을 보면 배갈잔만 하다. 우리의 녹차잔보다도 훨씬 더 작다. 흔히들 일본인이 「축소자향적」이라고 하지만 중국사람도 못지 않다.<br/><br/>일본사람들의 좁은 공간의 영향을 받았다면 중국사람들은 도리어 넓은 공간의 영향을 받았으며, 또 일본사람들이 축소를 통한 「적응」을 추구했다면 중국사람들은 축소를 통한 「여유」를 추가했던 것이다. 중국인들은 작은 것에서도 큰 세계를 느낄 줄 알았기 때문이다.<br/><br/><br/><br/>1993년 신동아 별책부록에서 발췌<br/><br/>鄭錫元(정석원)<br/><br/><br/>漢陽大人文大副敎授.中國學術思想(한양대인문대부교수 중국학술사상)<br/><br/>(출처 : &#039;중국인을 이해하는 열가지 核心&#039; - 네이버 지식iN)]]></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11 Mar 2014 09:37:49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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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중국의 소수민족</title>
<link>https://insupark.cafe24.com:443/bbs/board.php?bo_table=0102&amp;amp;wr_id=12</link>
<description><![CDATA[55개의 민족으로 전체 인구의 약 8.5%를 차지하며 좡족, 만주족, 후이족, 먀오족, 위구르족, 몽골족, 조선족 등이 있음.<br/><br/>중국은 다수민족인 한족과 55개의 소수민족으로 이루어진 다민족국가다. 한족이 중국 전체 인구(2011년 7월 기준 13억 4324만 명) 가운데 약 91.5%를 구성하고 있고 나머지 55개 소수민족이 약 8.5%를 차지한다. 인구로는 10%가 채 안되지만 소수민족이 자치하는 면적은 중국 전체 영토의 60%에 달한다. 중국 정부는 5개 구와 30개 주, 120개 현에서 이들 소수민족의 자치를 허용하고 있다.<br/><br/>55개 소수민족으로는 좡족, 만주족, 후이족, 먀오족, 위구르족, 몽골족, 조선족 등이 있다. 이 중 1000만 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민족은 중국 남부 광서족 자치구의 좡족, 중국 동북부 지역의 만주족, 중국 서부에 삶의 터전이 있는 후이족이다. 좡족(壯族)이 1800만 명 이상으로 인구가 많은 편에 속하며 원래 퉁족으로 불렸다. 만주족은 요녕성, 길림성, 흑룡가성 등 중국 동북부 지역에 터전을 잡고 살아온 퉁구스계 민족이다. 후이족은 언어와 생활습관 등은 한족과 거의 똑같지만 이슬람교를 믿는다. 소수민족들이 사는 대부분의 지역은 가스와 석탄 등 천연자원과 삼림, 수력자원이 풍부한 경제자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중국이 산업화와 현대화정책을 추진해감에 따라 중국 경제에 없어서는 안될 핵심적인 지역이다. 또한, 이 지역들은 대부분 러시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인도, 베트남, 북한 등 많은 국가들과 접경하고 있는 특수성 때문에 특히 전략적으로도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br/><br/>중국 정부는 소수민족 정책으로 강경책과 유화책을 병행한다. 그러나 일관되게 한족 중심의 중화사상을 바탕으로 소수민족들의 일방적인 동화를 요구하였다. 중국 정부는 1949년 소수민족에 폭넓은 자치권을 부여해 이를 포용하기도 하였는데, 한족과는 달리 두 자녀 출산을 허용하고, 대학입학 시 우대점수 부여, 범죄에 있어서도 상대적을 관대하게 처벌하였다.<br/><br/>중국 정부와 소수민족 사이에는 끊임없는 분쟁이 일어나고 있다. 2008년 3월과 2009년 7월 티베트와 신장위구르 지역에서는 독립을 주장하는 대규모 민족시위가 있었다. 2009년 한족이 서부 개발붐과 관련하여 상권과 취업기회를 독차지 한데서 위구르족의 봉기가 일어났으며 2011년 네이멍구 봉기는 광산 개발권을 쥔 한족과 유목으로 생계를 꾸리는 몽골족의 갈등으로 촉발되었다.]]></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11 Mar 2014 09:29:32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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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중국 부유층 해외 이민 러쉬 왜?</title>
<link>https://insupark.cafe24.com:443/bbs/board.php?bo_table=0102&amp;amp;wr_id=11</link>
<description><![CDATA[최근 중국 부유층들의 해외 이민 러쉬가 발생하고 있으며 중국초상은행에서 조사한데 따르면 투자 가능한 자산 1,000万元 이상(한화 약 17억원)을&nbsp; 보유한 사람 중 60% 이상이 이미 이민을 했거나 이민을 고려하고 있음.<br/><br/><br/>이민의 주요 이유로는 자녀 교육,&nbsp; 중국 내 사회복지 제도 미비, 해외 시장개척의 편의성 도모 ,&nbsp; 재부 안정성 강화등을 위해서임<br/>◾자녀교육 : <br/>중국은 대학입시 시 거주지와 무관하게 반드시 호적지에 가서 시험을 봐야 하며 북경에 거주하는 많은 부유층들은 북경시 호적이 아닐 경우&nbsp; 자녀가 북경에서 대학 입시를 볼수 없는 상황임.&nbsp; 하여 많은 부모들은 차라리 이민을 가 자녀가 외국에서 대학입시를 보는 방법을 선택하고 있음.<br/>2010년 약 100만명(응시 인수는 940만명)의 학생들이 중국 대학입시를 포기하였으며 그중 20% 이상은 해외 유학을 선택.<br/><br/>◾해외 시장 개척의 편의성 도모 : <br/>현재 중국의 기업가들이 미국 시장 시찰을 위해 비자를 신청하는데 필요한 시간은 평균 1개월로 미국 등 나라의 비자는 신청하기 어려운 상황이며 많은 경우 비자를 받았다 해도 비즈니스 기회를 놓쳐버리는 경우가 자주 발생.<br/>미국, 캐나다 등 나라로의 이민은 해외시장 개척의 편의성을 제공하고 있음<br/>◾완비한 사회복지제도 : <br/>중국은&nbsp; 주택, 의료, 양로 등 사회복지제도가 미비하여 사회복지제도가 완비된 해외로 이민을 가는 경우도 많음.<br/>중국의 높은 집값 등으로 북경 2환내 one bedroom 아파트 한개를 살 돈으로 캐나다에 가서는 200평방미터의 단독 별장을 살수 있음.<br/>◾재부 안전성 : <br/>중국은 국영경제가 주도하고 있어 민간자본의 투자는 많은 제한을 받고 있으며 공평한 시장환경이 주어지지 않고 있음. 또한 최근 빈부격차 확대 등으로 부자들에 대한 증오(仇富) 심리가 나타나고 있어 중국의 부유층들은 자산의 재부를 지키기 위하여 이민을 고려하고 있음.]]></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Wed, 05 Mar 2014 14:01:56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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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대졸 구직자들의 선호 1순위! 연봉보다는 호구</title>
<link>https://insupark.cafe24.com:443/bbs/board.php?bo_table=0102&amp;amp;wr_id=10</link>
<description><![CDATA[□ 중국 대학생은 대학 입학 時 본인 호적을 대학교로 轉籍해야 하며 대학 졸업 후 호구 해결 혹은 原籍으로 이전 등 절차를&nbsp;  밟아야 함<br/><br/>- 轉籍 : 대학 입학 時 호적을 原籍에서 해당 대학교로 轉籍 (同 호적은 集体戶口로 불리며 戶主는 해당 대학교)<br/><br/>- 移轉 : 대학 졸업 時 채용 기업에서 호구를 해결해 줄 경우 기업 소재지 호구를 받으며 그렇지 못할 경우&nbsp; 原籍으로 다시 가져가거나 臨時(2年)로 인재교류중심<br/>(정부 인재 육성 및 관리 센터)에서 위탁 관리<br/><br/>※ 기업은 인사국으로부터 호구를 해결할 수 있는 정원(호구지표)을 할당 받아야 대졸생들을 위해 호구를 해결해 줄수 잇음.<br/><br/>□ 국유기업 등은 호구를 해결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아&nbsp; 대학생들은 졸업 후 국유기업 취직을 선호하고 있음<br/><br/>- 事業單位(행정기관 산하 교육, 과학기술 등 기관), 대형국유기업 等은 대부분 北京市 호구 해결이 가능하며 기타 기업들은 매년 人事局으로부터 일정 규모의 定員을<br/>&nbsp;할당 받고 人事局에 신청·비준을 받아 대졸생 호구 해결<br/><br/>※ 외자기업은 직접 신청할 수 없으며 FESCO 等 인력대행기구를 통해 신청<br/><br/>·北京 等 대도시의 경우 매년 호구를 취득하는 인구수를 통제하고 있으며 호구 해결이 매우 어려운 상황임.&nbsp; ’11年 北京市 人事局이 발표한 정원은 6千名으로<br/>前年 대비 2/3 감소(’10年 대졸생 규모 630万名)<br/><br/>※현재 인터넷 등에서는 北京市 호구지표가 15万위안(2,500만원)에 거래되고 있음]]></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Wed, 05 Mar 2014 14:01:00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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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알고도 모를 베이징 호적??</title>
<link>https://insupark.cafe24.com:443/bbs/board.php?bo_table=0102&amp;amp;wr_id=9</link>
<description><![CDATA[“니 스 나리런? (어느 지방 사람이세요?)&nbsp; 중국사람들을 처음 만났을 때 이름보다 더 먼저 묻는 질문입니다. 땅도 넓고 인구도 많은 중국에서 어느 지방 사람인지 알면 그 사람 성향과 기질을 파악할수 있습니다.<br/><br/><br/><br/>겉으로는 허름한 옷차림에 시골사람같이 보여도 베이징 사람이라고 하면 다시 보게 됩니다. 특히 베이징에 이주해 와서 살고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베이표(北漂， 북경에서 떠돌아다니는 사람)&nbsp;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이렇다 보니 많은 타지방 사람들은 진짜 베이징런이 되기 위해 북경시 호구를 얻고 싶어합니다. 진짜 베이징런이 되고 싶어하는 이유는 내가 진짜 베이징에 속한다는 귀속감 (떠돌이하는 사람이 아니고 당당한 북경사람이라는 귀속감), 그리고 베이징런 만이 누릴수 있는 여러 복지혜택때문입니다. <br/><br/>&nbsp;<br/><br/>※&nbsp; &nbsp; 자녀교육 문제<br/>- 북경시 호구가 없으면 자녀가 북경에서 학교 다닐때 借读费(jie4 du2 fei4, 북경시 시민이 아닌 외지사람이 북경에서 잠시 학교를 빌려서 공부하는 비용) 를 내야 합니다. 학교에 따라 금액이 다른데 북경에서 인기가 많은 학교일 경우에는 1년에 3~4만RMB (일반 직장인의 1년 연봉입니다) 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借读费를 내지 않는 학교도 있지만 북경에서 괜찮다는 학교인 경우는 대부분 내야 합니다. <br/>-借读费를 내고 북경시에서 소학교~고등학교까지 공부했다 하더라도 북경시 호구가 없으면 북경에서 대학입시 시험을 보지 못합니다. 중국 교육부에서 명확히 규정한데 의하면 대학입시 때 학생들은 반드시 자기 호구가 있는 지역에 가서 대학입시시험을 봐야 합니다. 만일 호구가 길림성 호구라면 반드시 길림성에 가서 시험을 봐야 합니다. 호구가 있는 지역에 가서 시험을 봐야 하는건 괜찮지만 제일 큰 문제는 중국에서는 같은 대학교라도 省별로 입학점수가 다릅니다. <br/>예하면 중국인민대학일 경우, 제가 대학 입학할때 점수를 590점(길림성 호구) 을 맞았는데 저와 같은 반 친구인 북경애들은 (북경시 호구) 저보다 훨씬 낮은 530점 정도로 입학을 했었습니다 (그땐 정말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 같은 학생인데 왜 우리는 북경애들보다 점수를 더 많이 따야 하는지…) 그리고 중국에서는 대학입시 때 각 성별로 합격자 수를 定額으로 규정하는데 예하면 제가 입학할때 저희 길림성에서는 40명, 북겨시에서는 340명이 중국인민대학에 입학할수 있도록 규정하였습니다. 북경시 학생들에 비하면 저희들의 경쟁이 훨씬 치열한거죠… 이러니 자식의 교육문제를 위해서라도 북경시 호구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님들의 마음을 이해할수가 있습니다. <br/><br/>※&nbsp; 일상생활의 불편함<br/>- 중국에서는 살면서 많은 절차 들을 자기 호구가 있는 지역에 가서 신청/ 승인 받아야 합니다.&nbsp; <br/>예하면 북경에 거주 한다 해도 결혼신고는 자기 호구가 있는 지역에 가서 해야 하고 북경에서 못합니다.&nbsp; 그래서 결혼신고를 할려면 두 사람이 휴가를 내서 고향에 다녀와야 합니다.&nbsp; <br/>여권 신청도 아무데서나 못하고 꼭 자기 호구가 있는 지역에 가서 신청을 해야 합니다.&nbsp; 비자 신청을 할때도 북경시 호구가 아니면 꼭 暫住證 (북경에 잠시 거주한다는 증명)을 제출해야 합니다. <br/>북경시 호구가 아니면 핸드폰 요금도 후불제를 신청하지 못합니다.&nbsp; (카드로 충전하는 선불제를 사용하거나 아니면 북경시 호구가 있는 사람이 담보를 서야 합니다) . <br/><br/><br/><br/>한국분들한테는 이해가 안될수도 있겠지만 이게 중국의 현실입니다.<br/><br/>&nbsp;<br/><br/>2001년 북경시 정부가 발표한 文件 “북경에 투자한 외지투자자 북경시 호구 신청 관련 방법” 에 의하면 “북경에서 사영기업을 설립한 사영기업주가 북경시 호구를 신청할수 있는 조건은 기업이 연속 3년간 매년 납세액 80만 위안이상 혹은 최근 3년 총 납세액 300만위안 이상” 이여야 합니다. 이에 근거하여 인터넷에서 많은 중국 네티즌들은 “ 한개 북경시 호구의 가치는 80~100만 위안” 이라고 합니다. <br/>&nbsp;(상기 계산법에 의거,&nbsp; 북경시 호구를 팔수 있다면 저는 이미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ㅋㅋㅋ)<br/><br/>&nbsp;<br/><br/>중국의 호구제도는(한국의 주민등록제도와 달리 마음대로 변경할수가 없습니다) 1950년대 농촌 인구가 도시로 유입되는것을 막기 위해 도입한것으로서 이미 몇년전부터 《현대판 신분제》라는 비판을 받고 있으며 새로운 호구등록제도 도입 관련하여 검토??를 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도 긴 시간이 필요할것 같습니다. <br/><br/>제 친구들(북경시 호구가 없는) 자식들이 북경에서 공부를 하고 북경에서 대학입시시험을 볼수 있을가요??&nbsp; 아직은 몇십년 후의 일이지만 그때 가서는 중국에 새로운 호구등록제도가 도입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Wed, 05 Mar 2014 13:52:47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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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중국의 사회 개황</title>
<link>https://insupark.cafe24.com:443/bbs/board.php?bo_table=0102&amp;amp;wr_id=8</link>
<description><![CDATA[중국의 사회는 다음과 같이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br/><br/>1. 중국의 주민<br/>&nbsp; 1) 중국의 민족<br/>&nbsp; 2) 중국의 언어<br/><br/>2. 중국의 인구<br/>&nbsp; 1) 중국의 인구정책<br/>&nbsp; 2) 중국의 최근 인구증가 추이<br/>&nbsp; 3) 중국의 인구조사 통계<br/>&nbsp; 4) 중국 인구의 문제점<br/><br/>3. 중국의 소수민족<br/>&nbsp; 1) 중국 소수민족 정책의 원칙<br/>&nbsp; 2) 중국 소수민족의 사회<br/>&nbsp; &nbsp; ① 중국 소수민족의 언어<br/>&nbsp; &nbsp; ② 중국 소수민족의 종교<br/>&nbsp; &nbsp; ③ 중국 소수민족의 풍속<br/>&nbsp; 3) 중국 소수민족의 인구와 분포<br/>&nbsp; 4) 중국 소수민족의 특징<br/>&nbsp; &nbsp; ① 중국 소수민족의 인구증가율<br/>&nbsp; &nbsp; ② 중국 소수민족의 분포지역과 점유면적<br/>&nbsp; &nbsp; ③ 중국 소수민족의 분포 특징<br/>&nbsp; &nbsp; ④ 중국 소수민족 거주지 특징<br/><br/>3. 중국의 교육<br/>&nbsp; 1) 중국의 교육 실태<br/>&nbsp; 2) 중국의 교육 체계<br/>&nbsp; &nbsp; ① 중국의 학제<br/>&nbsp; &nbsp; ② 중국의 기초교육 과정<br/>&nbsp; &nbsp; ③ 중국의 직업기술교육 과정<br/>&nbsp; &nbsp; ④ 중국의 고등교육 과정<br/>&nbsp; &nbsp; ⑤ 중국의 성인교육 및 특수교육 과정<br/>&nbsp; 3) 중국 교육의 대외교류와 협력<br/><br/>4. 중국의 언론·출판<br/>&nbsp; 1) 중국의 신문·잡지<br/>&nbsp; 2) 중국의 방송<br/>&nbsp; 3) 중국의 통신<br/><br/>5. 중국의 종교<br/>&nbsp; 1) 중국의 종교 정책노선<br/>&nbsp; 2) 중국의 종교 조직<br/>&nbsp; 3) 중국의 주요 종교활동<br/><br/>6. 중국의 체육<br/>&nbsp; 1) 중국의 체육 정책<br/>&nbsp; 2) 중국의 체육 조직<br/><br/>※ 본 컨텐츠는 2011년 기준으로 작성된 외교통상부 국가개황 자료입니다.<br/>2011년 이후 변경된 사항은 문서에 반영되지 않았으므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Wed, 26 Feb 2014 10:53:03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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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중국 고전의 분류</title>
<link>https://insupark.cafe24.com:443/bbs/board.php?bo_table=0102&amp;amp;wr_id=7</link>
<description><![CDATA[중국 고전은 경사자집(經史子集)의 4가지 분류로 나눔.<br/><br/>1) 經은 &lt;주역 周易&gt; · &lt;서경 書經&gt; · &lt;시경 詩經&gt; · &lt;주례 周禮&gt; · &lt;예기 禮記&gt; · &lt;의례 儀禮&gt; · &lt;춘추좌씨전 春秋左氏傳&gt; · &lt;춘추공양전 春秋公羊傳&gt; · &lt;춘추곡량전 春秋穀梁傳&gt; · &lt;논어 論語&gt; · &lt;효경 孝經&gt; · &lt;이아 爾雅&gt; · &lt;맹자 孟子&gt;까지 보통 13경(經)을 꼽음.<br/><br/>2) 史는 25史: 사마천의 사기 ~ 청사고까지 25종의 역사서.<br/>&nbsp;&lt;사기 史記&gt; · &lt;한서 漢書&gt; · &lt;후한서 後漢書&gt; · &lt;삼국지 三國志&gt; · &lt;진서 晉書&gt; · &lt;송서 宋書&gt; · &lt;남제서 南齊書&gt; · &lt;양서 梁書&gt; · &lt;진서 陳書&gt; · &lt;위서 魏書&gt; · &lt;북제서 北齊書&gt; · &lt;주서 周書&gt; · &lt;남사 南史&gt; · &lt;북사 北史&gt; · &lt;수서 隋書&gt; · &lt;구당서 舊唐書&gt; · &lt;신당서 新唐書&gt; · &lt;구오대사 舊五代史&gt; · &lt;신오대사 新五代史&gt; · &lt;송사 宋史&gt; · &lt;요사 遼史&gt; · &lt;금사 金史&gt; · &lt;원사 元史&gt; · &lt;명사 明史&gt;까지가 24사.<br/>여기에 &lt;청사고 淸史稿&gt;를 더하면 25사, &lt;신원사 新元史&gt;까지 합치면 26사라고 함.<br/><br/>3) 子는 제자백가라고 불리는데, 크게 유가(儒家) · 묵가(墨家) · 도가(道家) · 음양가(陰陽家) · 명가(名家) · 종횡가(縱橫家) · 법가(法家) · 잡가(雜家) · 농가(農家)의 9유파(流派)로 나눔.<br/><br/>4) 集은 시(詩)·부(賦) 등의 개인 문집. 문학책이 여기에 포함됨.]]></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hu, 13 Feb 2014 11:35:50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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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중국인들이 생각하는 숫자의 의미</title>
<link>https://insupark.cafe24.com:443/bbs/board.php?bo_table=0102&amp;amp;wr_id=6</link>
<description><![CDATA[숫자 ‘8’만 있으면 만사형통!!!<br/><br/>전 세계가 공통으로 쓰고 있는 아라비아 숫자 9개. 각각의 숫자는 단순히 수치를 가리키는 차원을 넘어 한 나라의 문화를 담는 그릇으로도 쓰이고 있다. 앞으로 사회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숫자가 갖는 의미가 더욱 많아지고 풍부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모든 것이 숫자로 표시되는 디지털 세상에서는 숫자가 갖는 의미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13억의 중국인들은 숫자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까? 우리와 같은 의미를 담고 있는 것도 있지만 어떤 경우 전혀 다른 의미를 띠기도 한다. 지금부터 숫자에 담긴 의미를 통해 중국인의 문화를 살펴본다. <br/><br/>먼저 한국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대표적인 숫자인 ‘7’의 예를 들어보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숫자 7에 ‘행운’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그 이유는 ‘럭키 세븐’이라 지칭하며 행운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믿는 서양문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br/><br/>하지만 중국인들은 7이란 숫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장례 풍습과 연관이 많은 숫자이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사람이 죽은 다음 매 7일이 될 때마다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다. 죽은 지 7일이 되면 종이돈을 태우는 소칠(燒七)을 하고 49일째 되는 날에는 칠칠제(七七祭)라는 제사를 지낸다. 이처럼 숫자 7은 제사와 관련이 많아 중국인들은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br/><br/>그런데 중국인들만큼 숫자에 집착하는 민족도 드물 것이다. 일부 중국인들 중에는 숫자로 표기되는 자동차 번호판이나 전화번호 등에 들어가는 숫자에 과도하게 집착하기도 한다. 자신이 원하는 숫자가 들어간 번호를 갖기 위해서라면 거액의 프리미엄도 마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br/><br/>1부터 10까지의 숫자를 중국인의 생각에 따라 분류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선 중국인이 제일 선호하는 숫자에는 ‘8’, ‘6’, ‘9’, ‘2’가 있으며, 싫어하는 숫자에는 ‘7’, ‘10’, ‘4’가 있다. 이를 제외한 ‘1’, ‘3’, ‘5’ 등은 긍정적인 의미를 내포하지만 큰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는다. <br/><br/>중국인들이 선호하는 숫자 <br/><br/>8(八)은 중국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숫자이다. &#039;八&#039;의 중국어 발음은 &#039;pa(파)&#039;인데 &#039;發(발)&#039;의 &#039;fa(파)&#039;와 발음이 비슷하다. 이 發자에는 &#039;發財(돈을 벌다 또는 재산을 모으다)&#039;의 의미가 담겨있어 8이 많이 들어있는 번호를 가지면 그만큼 ‘돈이 많이 들어온다’라고 중국인들은 생각한다. 8로 이루어진 전화번호나 휴대폰 번호, 자동차 번호판 등에 거액의 프리미엄이 붙어 판매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br/><br/>시장이나 백화점에 가면 88元, 888元 등 8로 끝나는 가격표를 흔히 볼 수 있다. 가격을 이렇게 붙여놓으면 깎기 좋아하는 중국 사람이라도 흥정을 않고 그냥 물건을 사간다고 한다. 이 외에도 1988년 8월 8일을 길일(吉日)로 여겨 이날 결혼식을 올리려는 사람이 많아 결혼 관련 상품이나 이벤트 업종이 때아닌 호황을 맞은 일도 있었다고 한다. <br/><br/>한편 이를 적극 활용한 방법으로 사업이나 여행을 위해 중국으로 갈 때 우리나라의 88담배를 준비해 간다면 중국인들에게는 더 없이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6(六)은 길상(吉祥)을 상징하는 숫자로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풀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liu(류)’로 발음되는 숫자 6은 ‘잘 되어간다 또는 잘 나간다’ 는 뜻을 가지고 있는 ‘이루순펑(一路順風)’의 ‘lu(루)’와 발음이 비슷해 이와 같은 의미가 부여되었다고 한다. <br/><br/>9(九)는 완벽함을 상징하는 숫자이다. 여기에 &#039;오래가다, 장수하다&#039;는 뜻을 가지고 있는 &#039;久&#039;와 발음이 비슷해 장수한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더불어 남성의 활력을 상징하거나 황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br/><br/>2(二)는 ‘짝을 이루고 서로 화합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 선호하는 숫자이다. 중국의 원시종교와 도교에서는 짝수를 길한 숫자로 여겼는데 2가 가장 먼저 나온 짝수이기 때문에 큰 의미를 부여하게 된 것이다.<br/><br/>긍정적이지만 큰 의미는 없는 숫자 <br/><br/>1(一)은 예로부터 중국 사람들이 매우 숭상해 온 숫자로 모든 수의 시작이요, 만물의 기조이며, 만사의 근원이라 여기고 있다. <br/><br/>3(三)은 신비한 색채를 가진 숫자로 길상(吉祥)을 표시하는 숫자로 여겨왔다. 5(五)는 중국 사람이 가장 신비롭게 여기고 있는 숫자이다. 오행(五行)이나 오언 절구(五言絶句)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옛 성인의 말씀이나 시구와 관련이 깊다. <br/><br/>중국인들이 꺼리는 숫자 <br/><br/>4(四)는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죽을 死(사)와 발음이 같아 중국 사람들 역시 매우 기피한다. <br/><br/>7(七)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장례나 제사와 관련이 많아 사람들이 선호하지 않는다. <br/><br/>10(十)은 ‘많다(多)&#039;, &#039;가득하다(滿)&#039;의 의미를 갖고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망했다’는 의미를 더 크게 부여하고 있다. <br/><br/>지금까지 간단하게나마 중국인들이 생각하는 숫자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일상생활에서 자주 접하는 것이지만 숫자는 단순히 셈을 헤아리는 것 이외에도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숫자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해 중국 사람들을 이해한다면 중국시장을 공략하는데 있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것이다. <br/><br/>기사제공 : 월간 위드차이나]]></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Wed, 12 Feb 2014 02:37:44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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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조요셉] 중국인을 이해하는 키워드 세가지-체면(面子), 관계(關係), 인정(人情)</title>
<link>https://insupark.cafe24.com:443/bbs/board.php?bo_table=0102&amp;amp;wr_id=5</link>
<description><![CDATA[체면(面子), 관계(關係), 인정(人情)<br/><br/>‘중국인은 이렇다’라고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낱말은 없을까? 물론 중국인은 특성은 그 인구만큼이나 다양하겠지만 중국인의 민족성을 세가지 단어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중국인을 이해하는 세가지 키워드는 바로 체면(面子), 관계(關係) 그리고 인정(人情)이다.<br/><br/>&nbsp; 중국인을 대표하는 첫 번째 키워드는 체면(面子)이다. 중국어에는 체면에 관한 다양한 표현이 있다. ‘체면을 돌아보다(顧面子)’, ‘체면을 다투다(爭面子)’, ‘체면을 주다(給面子)’, ‘체면을 잃다(丟面子)’, ‘체면을 말하다(講面子)’, ‘체면을 사랑하다(愛面子)’, ‘체면을 유지하다(留面子)’, ‘체면을 늘리다(增加面子)’, ‘체면을 빌리다(借面子)’, ‘체면을 보아주다(看面子)’등이 중국어에 자주 쓰이는 체면에 관한 단어들이다. 체면에 관한 표현이 중국어에는 우리말보다 훨씬 다양하지 않은가?<br/><br/>&nbsp; 물론 한국인들도 중국인 못지않게 체면을 중시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인의 체면과 한국인의 체면은 좀 다른 개념이다. 중국인의 체면은 한국인의 그것보다 훨씬 더 자기중심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br/><br/>&nbsp; 여러 연구에 의하면 중국인은 일반적으로 자신을 평가할 때 자신에게 매우 후한 점수를 준 반면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평가할 때는 훨씬 낮은 점수가 받는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중국인은 자신을 실제보다 높게 평가하는 습성이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것이 중화사상의 뿌리가 아닌가 생각한다.) 중국인의 이런 자기중심적인 태도는 강한 자기 주장과 권리 요구로 이어지지만 자신의 책임과는 무관한 편이다. 중국인과 오랫동안 접촉한 사람들이 거의 예외 없이 느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br/><br/>&nbsp; 일반적으로 중국인은 자신의 실수를 잘 인정하지 않는 편이다. 자신이 실수를 범하였을 때는 태연하게 ‘괜찮아요’ (沒事 혹은 不要緊)라고 하며 좀처럼 ‘미안하다(對不起)’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렇게 책임을 회피하는 점이야 말로 중국인을 대하는 외국인을 힘들게 한다. 그리고 중국인은 자신에 대한 평가가 지나치게 높기 때문에 좀처럼 다른 사람들의 비판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자신에 대한 비평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러므로 중국인을 대할 때는 절대로 비평하지 말고 체면을 세워줘야 한다. 체면을 세워 주면 협상에서 자신이 원하는 양보나 이익을 얻어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br/><br/>&nbsp; 중국인을 이해할 수 있는 두 번째 키워드는 바로 관계(關係, 중국어 발음으로는 꽌시)다. 이 꽌시를 빼 놓고는 중국인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다. 중국은 한마디로 모든 것이 꽌시를 통해 움직이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중국어엔 ‘꽌시가 있으면 문제 없고 꽌시가 없으면 문제가 있다(有關係就沒有關係, 沒有關係就有關係, ‘관계’라는 단어를 이용한 언어 유희)’라고 하는 말이 있다. 그래서 혹자는 중국에선 안 되는 일도 없고 되는 일도 없다고 말한다. 이는 꽌시만 있으면 안 되는 일도 없지만 꽌시가 없으면 될 일도 안 된다는 푸념 섞인 말이 아닐까?<br/><br/>&nbsp; 한마디로 중국에선 모든 자원이 관계망(네트워크)을 통해 움직인다. 정상적인 기업 활동을 위한 관계 기관의 허가, 기업의 구매, 판매 활동등은 물론이고 개인적인 승진, 전직, 구직, 심지어 모든 특혜까지도 모든 것이 관계를 통해 움직인다. 그러므로 중국인은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 관계를 찾고(找關係), 새로운 관계를 맺거나(拉關係) 잘 유지하기(搞好關係) 위해 열심히 ‘식사에 초대하기(請客)나 선물주기(送禮)’등을 한다. 이 점을 잘 알고 있는 몇몇 다국적 기업들은 중국에서의 사업을 무리 없이 진행하기 위해 사업 초기부터 동남 아시아의 화교 자본과 제휴하여 중국에 진출하기도 했다.<br/><br/>&nbsp; 그런데 이 관계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관계가 없을(沒關係, 중국어로 메이꽌시)일 경우이다. 중국인은 일반적으로 관계가 있는 사람끼리는 강한 유대감과 친근감이 있는 반면 관계가 없는(沒關係) 사람들끼리는 상부상조는커녕 서로 적대시 하기 때문이다. 고향을 떠나 대도시에 올라온 외부인(外地人)은 관계가 없는 세계에 놓인 사람들로 대도시에서 꽤나 냉대를 받는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모임이 바로 대도시의 동향모임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중국인은 북경에 자신의 고향 출신을 도와줄 수 있는 동향 모임(鄕黨)을 만들고 수도에 올라와 공부하거나 일하고 있는 같은 고향 출신들을 도와주는 전통을 갖고 있다.<br/><br/>&nbsp; 그러므로 우리가 중국인의 인적 물적 자원을 함께 공유하고 그 자원을 통해 뭔가를 이루려면 좋은 꽌시를 개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중국인과 관계 하려는 사람들은 반드시 좋은 꽌시란 하루 이틀에 이뤄지는 것이 아닐뿐더러 끊임 없이 노력해야 그 꽌시가 유지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br/><br/>&nbsp; 중국인을 이해할 수 있는 세 번째 키워드는 바로 인정(人情)이다. 한 중국학 학자의 말에 의하면 중국인에게 있어 ‘인정(人情)’이란 ‘자신과의 거리(소원함과 친밀함의 정도)에 따라서 타인의 위치를 정하고, 그 거리에 맞추어 자신의 행위를 결정하는 심리적인 메커니즘’이다.<br/><br/>&nbsp; 다시 말하면 한 중국인이 ‘누구의 체면을 세워주고 누구의 체면은 세워주지 않을 것인가?’ 혹은 ‘누구와의 관계는 중시하고 누구와의 관계는 경시할 것인가?’를 결정 하는 데에 ‘인정’이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중국인은 상대방과의 거리에 따라 각기 다른 행동을 취하고 또 상대방의 다른 행동을 예상하기 때문이다. 만약 상대방과의 거리를 정확히 재지 못해서 거리에 맞는 행동을 취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인정을 이해하지 못했다(不懂人情)’고 해서 비난의 대상이 되고 만다.<br/><br/>&nbsp; 중국인은 자신과의 거리에 따라 타인을 세 부류로 구분하는데 바로 이 세 부류는 자기인(自己人, 중국어 발음으로는 쯔지렌), 외인(外人, 와이렌), 숙인(熟人, 수렌)이다. 첫 번째 부류 자기인(自己人)은 매우 친밀한 감정을 공유하는 사람들로서 당신과 나 사이에는 구별된 것이 없을 정도로 친하다는 의미이다. 자기인(自己人) 혈연 관계가 아닐지라도 성립할 수 있는데 중국인은 자기인(自己人)을 위해서 모든 자원을 쏟아 부어 도울 수 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외인(外人)과의 관계에서 중국인은 경우엔 ‘인정을 논하지 않는다(不講人情)’는 것이 일반적인 태도이다. 다시 말하면 중국인 사회에선 외인끼리는 다소 이중적인 공평 원칙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br/><br/>&nbsp; 그러면 중국인은 자기인만큼 친하지는 않지만 외인만큼 무관심하지도 않은 숙인(熟人)과의 관계에선 어떻게 할까? 바로 여기 숙인(熟人)과의 관계에서 ‘인정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중국인은 일반적으로 숙인(熟人)과의 관계에선 사회적 교환(social exchange) 관계인 회보(回報, ‘보답하다’ 혹은 ‘보복하다’는 의미)를 기대한다. 다시 말하면 숙인(熟人)과의 관계에서는 호혜의 원칙이 존재한다. 그러나 만약 숙인(熟人)간에 호혜의 원칙이 무너지면 관계가 깨어지고 호혜의 원칙이 잘 지켜지면 더 깊은 관계(쯔지렌)로 발전할 수 있다. 그래서 중국인은 숙인(熟人)간에 선물을 보내거나 편의를 봐주면서 상대방의 특별한 배려를 기대하는 행위를 ‘인정을 보내다(送人情)’혹은 ‘인정을 만들다(做人情)’라고 하며 인정을 보내거나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한다. 인정을 잘 만들면 만들수록 중국인과 거리가 가까워지며 중국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중국인 전도도 마찬가지다)<br/><br/>&nbsp; 이상에서 나는 체면(面子), 관계(關係), 인정(人情)이라는 세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중국인의 독특한 행동 법칙을 설명했다. 예로부터 한국과 중국은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의 관계이다. 21세기 중국 선교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한국이 계속 발전하기 위해서는 중국과 좋은 관계를 맺어나가야 한다고 나는 확신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당연히 중국을 연구하고 중국인을 깊이 이해해야만 한다. 중국인을 이해하는 깊이만큼 그들을 사랑할 수 있고 또 중국인들에게 효과적인 전도를 통해 그들을 예수님 안에서 변화 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Wed, 12 Feb 2014 02:07:18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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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중국 10대 고소득 직업은?</title>
<link>https://insupark.cafe24.com:443/bbs/board.php?bo_table=0102&amp;amp;wr_id=4</link>
<description><![CDATA[◆ 영업사원이 위상을 차지했다. <br/>우수한 판매원의 임금은 1만 위안을 넘는다. 우수한 영업사원은 모든 업계에서 환영받는다. 이는 모든 채용직 유형의 10 ~15%를 차지한다.<br/>&nbsp;<br/>◆ 부동산업 근무자의 임금은 월 8천~1만위안 정도다. <br/>올림픽 개념과 세계박람회 개념이 갈수로 뚜렷해져 부동산업은 날로 왕성해지고 있다. 향후 4~5년에 베이징시는 올림픽 등의 공사에 2천8백억위안을 투입할 것이다. 올 건축 및 부동산업 인재 부족이 6만4천명에 달한다.<br/><br/>◆ 금융업의 매력은 여전히 식지 않고 있다. <br/>금융업 매니저의 월급은 월 7천위안 정도다. 외자은행이 끝없이 진입하고 합자기금회사가 점차 많아져 은행과 기금이 인재에 대한 수요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인재 쟁탈 또한 매우 치열하다.<br/>&nbsp;<br/>◆ 물류업의 전망이 날로 밝아지고 있다. <br/>운수 및 물류업 매니저는 임금은 월 7천위안 정도다. 현재 중국 물류업 인재의 공급이 수요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고 채용단위들이 물류업 직업인증의 브랜드, 양성 품질, 교육 우위와 증서의 가치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br/>&nbsp;<br/>&nbsp;◆ IT업계 인재 쟁탈을 막을 수 없다. 컴퓨터업계 매니저의 임금은 월 6천위안을 넘는다. 중국 소프트웨어산업의 신속한 발전으로 컴퓨터 인재 수요는 매년 100만명씩 증가된다.<br/>&nbsp;<br/>◆ 자문업의 시세가 높다.&nbsp; <br/>MBA의 베테랑 고문들의 임금은 8천위안에 달한다. 자문기구의 등록 수량이 급증해 자문업 인재, 특히 높은 학력의 자문 인재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br/>◆ 온라인 게임업의 인재 결핍이 심각하다. <br/>임금이 월 8천위안에 달하지만 문의하는 사람이 적다. 2006년 중국 온라인게임 사용자 총수는 4천4백90만명에 달할 것이다. 온라인게임시장 규모가 80억 위안을 넘어 세계 최대 온라인게임 소프트웨어시장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br/>&nbsp;<br/>◆ 의약 인재 쟁탈이 가속화 되고 있다. <br/>임금이 월 4천5백위안에 달한다. 인구의 노령화와 생활이 부유해 짐에따라 의료위생이 21세기 최고 임금직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br/>&nbsp;<br/>&nbsp;◆ 네트워크 언론매체 직위 수요가 증가해 월 임금이 4천~5천위안, 심지어 1만위안을 넘는다. <br/>네트워크기술의 빠른 발전이 네트워크 편집 직위의 수요 증가를 재촉했다.<br/>&nbsp;<br/>◆ 교사는 많은 졸업생들이 동경하고 있는 직위다. <br/>대학 교사의 봉급이 월당 5천 위안을 넘는다. 현재 교사들의 평균 월급, 특히 대학 교사들의 월급은 이미 2배로 늘어나 ‘고소득자’가 되었다.]]></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Wed, 12 Feb 2014 02:01:30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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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중국의 문화 이해 - 술문화</title>
<link>https://insupark.cafe24.com:443/bbs/board.php?bo_table=0102&amp;amp;wr_id=3</link>
<description><![CDATA[중국에서 술의 역사는 5천년 전 &#039;용산문화(龍山文化)&#039; 시기로 올라간다. 상고 시대 술의 <br/>용도는 주로 제신(祭神)용이었지만, 인간의 사회가 발전하면서 술은 인간의 삶에서 빠질 수<br/>없는 기호품으로 변천하였다.<br/><br/>기록에 의하면 중국은 하왕조 때부터 술을 제조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역대의 왕후장상.<br/>영웅호걸. 문인묵객(文人墨客) 중에서 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술은<br/>옛사람들의 물질적, 정신적 생활과 사교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성어 중에는 <br/>&#039;주(酒)&#039;자를 가진 것이 매우 많은데,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br/><br/>&#039;차주부시(借酒賦詩 : 술을 빌어 시를 짓다.)&#039;<br/>&#039;차주서회(借酒抒懷 : 술을 빌어 회포를 푼다.)&#039;<br/>&#039;차주소수(借酒消愁 : 술을 빌어 근심을 푼다.)&#039;<br/>&#039;이주조흥(以酒助興 : 술로써 흥취를 돋군다.)&#039;<br/>&#039;이주장행(以酒壯行 : 술로써 장도에 오르는 것을 성대히 하다.)&#039;<br/><br/>당대의 유명한 현실주의 시인 두보는 그의 &lt;음중팔서가&gt;라는 시에서, &#039;이백은 술 한 말에<br/>시 백편을 짓고(李白斗酒詩百篇)&#039;라고 하였고, 당대의 시인 두목은 &lt;청명&gt;이라는 시에서, <br/>"술집이 어디냐고 물으니, 목동이 멀리 행화촌을 가리킨다."라고 하였다. 이로써 술 마시는<br/>풍속이 중국에서 얼마나 성행하였지를 알 수 있다.<br/><br/>술의 좋고 나쁨을 따지는 기준은 &#039;향기가 짙고, 부드러우며, 달콤한 맛이 있고, 뒷맛이 <br/>오래가는 점에 있는데 이것은 중국인들이 사람을 품평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br/>술은 식사 때 이외에도 초대자리나 거리의 술집에서 마셨다. 야채 절임, 짠맛이 나는 씨앗,<br/>나무열매, 그밖에 갈증을 돋구는 것이 안주로서 술과 함께 나왔다. 주루에서는 손님이 술을<br/>주문하면 앞서 나온 안주그릇은 치워지고 보다 좋은 요리가 나왔다.<br/><br/>① 술의 종류<br/>: 전통주는 &#039;백주(白酒)&#039;와 &#039;황주(黃酒)&#039; 두 종류로 분류되고, 그 외에 포도주, 과실주, 약주 등이 있다. 요즘은 전국적으로 &#039;팔대명주(八大名酒)&#039;와 &#039;십대명주(十大名酒)&#039; 등을 꼽는데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다. 모태주, 오량액, 분주, 죽엽청, 노주 대곡, 고정 공주, 동주, 검남춘, 공부가주, 서봉주, 소흥주, 포도주, 청도 오성 맥주 등이 있다.<br/>&#039;백주&#039;는 수수, 옥수수, 논벼, 밀, 소맥 등을 원료로 하고, 투명한 색을 띠며 알코올도수가 50-60도 정도로 매우 독하다. 대표적인 것으론 단연 &#039;모태주&#039;를 든다. "바람이 불면 그 향기 온 동네를 취하게 하고, 비가 그친 후 술병을 열면 십리까지 퍼진다"는 말처럼, &#039;술 중에 명주(明珠)&#039;로 꼽힌다.&#039; &#039;오량액&#039; 역시 이에 못지 않은 평을 받는 술인데, 수수, 쌀, 소맥, 찰벼, 옥수수 등 5가지 곡식으로 만든 점이 특징이다. 백주지만 맛이 자극적이지 않고 순하면서 달콤한 맛이 감돈다.<br/>&#039;황주&#039;는 23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데 술색이 황색이다. 찹쌀과 쌀을 주원료로 하며, 약 10-15도 정도이다. 소흥지방의 황주가 단연 압권인데 반주로 적당하며, 북방인들은 주로 겨울에 훠구어(火鍋)(샤브샤브와 비슷함)와 함께 황주를 마시는 재미로 추위를 잊는다고 한다.<br/>포도주는 주로 적포도주를 말하는데 &#039;금장 포도주&#039;와 북경 &#039;용안 포도주&#039;가 유명하다.<br/><br/>② 음주법<br/>: 중국인의 술자리는 그야말로 떠들썩한데 술자리의 핵심은 즐겁게 마신다는데 있기<br/>때문이다. 하지만 혼란한 와중에서 엄격히 지키는 술자리 예절이 있다. 이는 &#039;술 따르기&#039;, &#039;처음 술 권하기&#039;, &#039;술잔 부딪히기&#039;, 깐빼이(乾杯), &#039;술 권하기&#039; 등으로 집약되는데, 특히 주의할 점은 상대방의 눈을 보며 같이 입을 대고 같이 입을 떼야 한다. 만일 상대방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마시면 대작하기 싫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는 한국과 달리 술에 취해 주사를 부리면 인간취급을 받지 못한다. 이점을 특히 주의 해야한다.<br/><br/>ㄱ. 술 따르기<br/>"술을 가득 따르는 것을 존경하고, 차는 가득한 것을 업신여긴다"라 하듯이, 잔에 가득 따르는 것은 손님을 존경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윗사람이 먼저 따르기 시작하며 첨잔도 괜찮다.<br/><br/>ㄴ. 처음 술 권하기<br/>함께 술을 권주하는 것과, 윗사람이 먼저하고 순서대로 하는 것, 친구끼리 편하게 주고받는 것이 있다. 상대가 권하는데 거절하면 존경치 않는다는 의미이지만, 정 마시지 못할 경우 사정을 이야기하거나 대신 마시도록 부탁해도 괜찮다.<br/><br/>ㄷ. 잔 부딪히기<br/>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손으로 한다. 너무 세게 부딪히지 말고, 윗사람과 할 때는 상대 잔보다 낮은 위치에서 부딪힌다.<br/><br/>ㄹ. 건배(乾杯)<br/>단숨에 잔을 비우는 것으로, 마신 후에는 상대에게 잔을 거꾸로 들어 빈 것을 보여준다. 건배는 호방한 성격임을 나타내는 것이며, 서로 기질이 통하고, 친구로 사귈 만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강요해서는 안 되고, 응하지 못할 경우는 사정을 말하며 양해를 구하면 된다. 단숨에 마시지 못하면 반잔이나 적당히 마시자는 등의 제안을 할 수 있다.<br/><br/>ㅁ. 술 권하기<br/>목적은 손님이 맘껏 취하게 하는데 있다. 손님을 잘 모신다는 주인의 뜻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술자리가 어느 정도 무르익으면 손님이 술을 마시게 하기 위해 각종 권주의 방법이 동원된다. 즐겁게 놀되 절대 인사불성으로 취하면 안 된다. 권주의 방법은 기기묘묘한데 전통적인 것으로는 투호(投壺)가 있고, 주령(酒令)과 시권(猜拳)이 있다. 서민들 사이에 가장 보편적인 놀이로 시권이 있는데 무전(拇戰) 혹은 초수(招手), 획권(劃拳)이라고도 한다. 요령은 두 사람이 숫자를 부르며 동시에 손가락으로 수를 표시하는데, 말하는 수와 내민 손가락의 총수가 같으면 이기는 것이다. 이 때 손가락으로 표시한 수는 입으로 부르는 수보다 적거나 같아야 한다. 진 사람이 벌주를 마시며 벌주는 석 잔이다. 잔은 돌리지 않는다.<br/><br/>③ 지역별 음주문화 <br/>: 지역별로 음주의 습관은 매우 다르다. 가령 강, 절 지역은 주로 황주를 마시고, 북경<br/>등지에서는 백주 특히 이과두를 즐긴다. 술의 선택도 지역에 따라 달라서 약한 술에서 독한 술로, 반대로 독한 술에서 약한 술로, 아니면 손님이 선택하는 등 다양하다. 보편적으로 북방은 독한 백주를 호방하게 마시며, 강남은 황주를 주로 하고 즐기듯 마신다.<br/><br/><br/>ㄱ. 안휘(安徽)지방<br/>전전으로 술을 권하는 주사령(酒司令)이 있어서 먼저 몇 순배 술을 돌리고 난 다음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이를 &#039;만당홍(滿堂紅)&#039;이라 하는데, 주량이 큰 사람을 찾는 것이다.<br/><br/>ㄴ. 광동지방<br/>주인이 먼저 술 한잔을 땅에 뿌려 악기를 없애고, 나이가 많은 손님이 오른손으로 술을 묻혀 식탁에 커다란 원을 그린다. 그러면 주인은 술을 권하는데, 못 마시는 사람은 마시지 않아도 되지만, 술잔을 엎어놓으면 절대로 안 된다. 친한 사이에서는 서로의 술을 마시기도 하는데 &#039;교수주(交手酒)&#039;라 하며, 깊은 정을 표시한다. 자리에 늦으면 벌주 세 잔을 마셔야 음식을 들 수 있다. 술자리가 무르익으면 시권을 하여 흥을 돋구는데, 매우 흥겨운 분위기이다.<br/><br/>ㄷ. 호북, 서북지방<br/>남녀노소 모두 술을 즐긴다. 특히 권주를 중시하여 손님을 대취하게 만든다.<br/><br/>ㄹ. 요하(遼夏)지방<br/>"손님은 누울 수 없고, 술상을 치울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즉 밤을 새며 술을 마시고 손님이 취해야 끝난다.<br/><br/>ㅁ. 교동(膠東: 산동)지방<br/>첫잔은 &#039;홍주(紅酒)&#039;를 마시고, 그 다음 백주를 마신다. 그리고 자리가 끝날 때 다시 &#039;홍주&#039;를 마신다. 이를 &#039;만당홍&#039;이라 한다. 술을 권할 때는 권하는 사람이 먼저 마시는데 &#039;술을 권하기 위해 먼저 마신다&#039;라는 말이 있다.<br/><br/>ㅂ. 대만지방<br/>대만에는 대통관(大通關)이라는 독특한 주법이 있다. 이는 주량이 좋은 사람이 같은 자리의 사람들과 일대일로 연속 건배를 하는 것으로 호기를 부리는데 사용된다.<br/>이처럼 중국인들은 &#039;술이 없으면 예를 다하지 못한다&#039;라 하여, 일상의 모든 행사에는 술이 빠지지 않는다. 개혁개방 이후 음주 인구가 날로 확대되는 추세이며, 젊은 층에서는 독한 백주보다 맥주를 선호한다. 이에 따라 현재의 중국의 맥주업계가 호황을 누리고 있다.<br/><br/>&lt; 중국 10대 명주&gt;<br/><br/>1. 茅 台 酒<br/><br/>茅台酒의 산지는 貴州省 仁懷縣 茅台鎭이고 800여년의 역사가 있으며, 1915년 파나마國際博覽會에서 금상을 받은 적도 있다. <br/>생산지인 茅台鎭에는 특수한 자연환경과 기후조건을 가지고 있다. 이 곳은 貴州고원의 제일 낮은 지점인 분지에 위치하고 있는데 해발은 440m 밖에 안되고 고원의 기류와 멀리 떨어져 있어 하루 종일 안개가 자욱하다. 여름에는 35-39℃에서 지속되는 고온기가 5달이나 되고 일년 중 절반이상이 무덥고 습한 안개 속에 잠긴다. 이런 특수한 자연조건은 술의 원료를 발효, 熟化하는데 매우 유리하며 동시에 茅台酒의 독특한 향기를 내는 미생물을 형성시키는데 결정적인 작용을 일으킨다. 만약 이런 자연조건이 없었다면 술의 맛도 변하고 특수한 향기도 없을 것이다. <br/>茅台鎭 주위지역과 전국 일부 술 공장에서 茅台酒를 모방하여 생산하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한 원인도 바로 여기에 있다. <br/>茅台酒는 110여가지에 달하는 향기를 가지고 있으며 마신 후 빈잔에도 오랫동안 향기가 사라지지 않는다. 향기성분은 술 제작과정 중에서 향료를 첨가하는 것이 아니라 전부 반복적인 발효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생기는 것이다. 술 도수는 52-54°사이를 유지하며 중국의 유명한 술 가운데서 도수가 제일 낮다. <br/>茅台酒의 제작기술은 다른 술과는 다른 생산 공정을 갖고 있고 생산주기는 7달이다. 생산해낸 술은 창고에 4년이상 저장하고, 다시 20년, 10년, 8년, 5년, 30년, 40년씩 저장한 술과 혼합한 후 시음을 통해 엄선한 후 판매한다. 茅台酒의 상표는 내수판매용과 수출용 두 가지로 나뉘는데 내수는 "金輪牌", 수출은 "飛仙牌"이다. <br/><br/>2. 五 糧 液 酒<br/><br/>四川성에는 5종의 백주가 중국에서 유명한 술로 인정받고 있으며 그 중 宜賓에서 제조한 五糧液酒가 가장 유명하다. 五糧液酒의 역사는 唐朝 때부터 시작하였고, 그 당시는 五糧液酒라고 이름하지 않았으며 그 당시의 술 성분, 품질도 지금의 五糧液酒와는 다르다. <br/>약 150년 전 宜賓에서는 5종의 곡식(수수, 입쌀, 酒米, 밀, 옥수수)을 원료로 하여 술을 빚었는데 당시는 "雜糧酒"라고 이름하였으며 금세기 20년대에 와서야 五糧液酒라고 이름을 고쳤다. <br/>1956년 중국 경공업부에서 주체한 曲酒질량감정회에서 五糧液酒는 농향형 술부분 1등상을 차지하였다. 그 후 五糧液酒는 여러 차례 국내외의 금상을 수여받았으며 70년대 초부터는 도수가 낮은 39° 五糧液酒를 개발, 판매하고 있다. <br/><br/>3. 汾 酒<br/><br/>大曲 淸香型 汾酒는 江西省 汾陽縣 杏花村에서 만들어 졌으며 10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汾酒는 唐代 이전의 黃酒로부터 기원하였고, 후에 백주로 발전하였다. 1914년 파나마國際博覽會에서 우승, 금상을 수여받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금 杏花村 汾酒공장은 중국 내에서 규모가 제일 큰 술 공장의 하나이며 생산과 품질은 계속 발전되고 있다. <br/>汾酒는 중국의 淸香型백주의 전형으로서 중국 백주 박람회에서 여러 차례 名酒 칭호를 받았고, 낮은 도수의(38°) 汾酒ㅡ汾特佳酒는 1987년 전국 소주 박람회에서 금상을 수여 받았다. <br/><br/>4. 古 井 貢 酒<br/><br/>古井貢酒는 濃香型大曲형태의 백주로서 중국 安徽성 毫현 古井貢酒공장에서 생산한다. 毫현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지방으로 東漢시기 曹操와 華陀의 고향이다. 일찍 東漢시기부터 毫州(毫縣의 옛칭)의 술은 유명했다고 한다. <br/>古井貢酒를 빚는 물은 우물(井)물인데 그 우물은 南北朝시대의 유적이고 15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明朝시기 明神宗이 이 술을 마시고 貢酒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 후로부터 明淸시기의 400여년 동안 古井貢酒는 줄곧 황제들의 공품으로 되었다.<br/><br/>5. 西 鳳 酒<br/><br/>西鳳酒는 陝西성 鳳翔, 寶鷄일대에서 제조되는 술로서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86년 발굴한 秦公1호 무덤에서 많은 술그릇이 발견되었는데 이로 비추어 27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西鳳酒는 鳳翔현 柳林진에서 제조하는 것이 제일 유명하며 주요 원료는 수수이고 샘물을 사용한다. 역사에 의하면 唐高宗이 이 술을 마셔보고 찬탄을 금치 못했다 한다. <br/><br/>6. 雙 溝 大 曲<br/><br/>雙溝大曲은 江蘇省 泗洪縣 雙溝鎭에서 만들어 낸 술이다. 중공이 건립된 후 雙溝 술 공장은 정부의 지원하에 새로운 면모를 갖추어 중국의 酒공장중에서 기계화 수준이 가장 높은 공장중에 하나였으며, 도수가 낮은 濃香型 大曲술을 개발 연구 제작하였다. 그리고 제품의 품질관련상과 중국과학연구상을 가장 많이 수여 받은 술로서 생산량이 가장 많은 술중에 하나이다. <br/><br/>7. 洋 河 大 曲<br/><br/>洋河大曲의 江蘇省 泗陽縣에서 생산한다. 전설에 의하면 淸朝의 乾隆황제가 두 번째로 강남을 여행할 때 洋河酒를 마시려고 일부러 이 부근에 머물러서 7일이나 술을 마셨다고 한다. 그리고 이 백주를 황실의 공품으로 정하였다. <br/><br/>8. 杜 康 酒 <br/><br/>杜康酒는 오랜역사를 가지고 있는 술이다. 杜康이 이 술을 빚었다고 하여 이름이 杜康酒라 하였고, 曹操, 杜甫, 蘇軾 등 역사 인물들이 모두 이 술을 좋아했다고 한다.<br/>杜康酒는 전통酒를 재발굴, 계승하기 위하여 중국이 1971년에 河南省 伊川縣에 건립한 "杜康酒復興硏究制作小組"에서 재창조되었다. 杜康이 술은 빚은 옛 고적지의 부근에 杜康酒공장을 건립(伊川杜康酒공장)하고 질이 좋은 밀, 수수 등을 원료로 전통적인 제작방법과 현대기술을 결합, 870여차의 실험을 거쳐 濃香型杜康酒를 만들어냈다. 1988년에 국가 연회용 술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구라파, 미주. 동남아시아 등 40여개 국가에 수출되고 있다. <br/><br/>9. 郞 酒<br/><br/>郞酒는 四川省의 二郞灘일대에 전파되었던 술이다. 역사에 따르면 北宋大觀, 宣和시기(1107-1125년) 二郞灘일대의 토족 주민들이 郞泉물로 빚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고 한다. 郞泉은 깊은 골짜기에서 솟아오르는 샘물로 겨울에는 따스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며 비가 내려도 샘물은 흐려지지 않고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郞酒는 茅台酒의 생산제작기술로 만들고, 그 맛은 茅台酒보다 못하나 나름대로의 독특한 향기를 갖고 있다 <br/><br/>10. 孔 府 家 酒<br/><br/>曲埠의 酒 문화역사는 유구하지만 孔府에서 술을 빚기 시작한 것은 明대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빚어낸 술로 제사에 사용하였지만 후에는 孔府에 드나드는 귀한 손님들한테 대접하여 연회용으로 사용되었다. <br/>지금 산동성 곡부 酒 공장에서 사용하는 孔府家酒는 도수가 39。의 소주이다. 孔府家酒는 1987년 중국포장장식평비회에서 금상을 수여 받았고, 제5차 優質酒로 은상을 받았다. 孔府家酒는 중국 내의 명성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유명하다. 孔府家酒는 중국의 백주중 생산량이 제일 많은 술중에 하나이다. <br/><br/>11. 瀘 州 特 曲 酒<br/><br/>사천 瀘州特曲酒공장에서 생산해 낸 이 술은 濃香型大曲 酒이며 중국의 17大 백주의 하나이다. 이 백주는 값이 저렴하여 서민들사이에 광범위하게 즐겨지고 있다. <br/>瀘州特曲이 독특한 풍미를 갖고 있는 주요한 원인은 발효시간을 길게 한데 있다. 역사적으로 발효시간이 길면 길수록 그곳에서 빚어낸 술의 품질은 더욱 좋다고 한다. 瀘州特曲공장에서 제일 오래된 술은 300여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고 한다. <br/>1917년 瀘州特曲은 파나마국제전람회에서 금상을 수여 받아 일반인들에게 더욱 알려졌으며 1953년에 전국 8대 백주의 하나로 되었다. 瀘州特曲은 중국내에서 애주가들의 환영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구라파, 아시아 등지로 수출되고 있다. <br/><br/>◎참고문헌<br/>1. 한권으로 이해하는 중국 강준영, 전병곤, 지세화 1997/8/30 지영사 P275-P279<br/>2. 중국의 어제와 오늘 왕순흥 편저 정차근, 김덕환 옮김 1999/3/8 평민사 P317-P319<br/>3. 전통 중국인의 일상생활 자크 제르네 지음 김영제 옮김 1995/3/15 신서원 P144-P145]]></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Wed, 12 Feb 2014 01:44:56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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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중국의 문화 이해 - 식사예절</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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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접대시의 예절 <br/><br/>중국방문시에는 일반적으로 식사향응을 받게 되는 바 비슷한 수준으로 접대가 필요하다. 접대받을 때, 참가한 중국인사들은 추진중인 상담과 대체로 종적•횡적 관계가 있음을 주의하여 접대시 모두 초청토록 해야 한다. <br/><br/>중국인들은 상호 체면중시를 감안하여 상대측의 인간관계를 면밀히 파악, 관계되는 자들에게 모두 공평하게 선물을 주거나, 기념조로 참가자 중 형식적인 최고직위자 1명에게 간단한 기념품 등을 주는 것이 오히려 효과적이다. 선물은 자연스런 자리에서 주도록 해야 한다. <br/><br/>1. 음식점에서 식사 초대를 받을 경우 중국인이 지정하는 자리에 앉는다. 왜냐하면 음식값을 지불하는 호스트가 좌석으로 결정되기 때문이 호스트가 착석후 앉는다. 또 식사중 호스트가 건배를 청하기 이전에는 건배 제의를 삼가해야 한다.<br/><br/>2. 식사할 때는 짝수인 8, 12가지나 16가지 요리가 상에 오르기 마련인데 (통상 12가지 ), 찬 요리가 먼저 나오며 가벼운 요리부터 시작해 여러 요리가 나오기에 되도록 자신의 식욕을 조절해서 먹어야 한다. 메인요리로는 생선찜이나 튀김이 많이 나오는데, 생선이 나오면 끝나가는 것이라 볼 수 있다. <br/><br/>3. 우리나라에서 반찬을 제외한 국과 밥은 개인별로 나누어 상을 차리는 것과는 달리 중국은 일반적으로 회전이 가능한 원탁에 한가지 요리를 한접시에 모두 담아 판을 돌려 가며 나누어 먹는 것이 외관상 눈에 띄는 습관의 차이 중의 하나다. 만약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경우 대개 채소 (쑤차이 : 素菜)와 육고기, 해산물 요리를 조합을 하고 냉채 (량차이 : 凉菜)와 더운음식을 적절히 조정하고 간단히 밥이나 면을 곁들여 주문하면 무난한 편이다. <br/><br/>4.식사중 정치이야기는 금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손님을 초대할 경우 손님에게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를 권하며 많은 음식을 준비하여 접대한다. <br/>음식을 맛있게 많이 먹어주며 음식이 맛있다는 칭찬을 함이 좋다. 준비 된 음식에는 적어도 한 번씩 손을 대는 것이 예의이며, 밥을 많이 먹는 것은 아직 양이 차지 않았다는 뜻이 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중국인은 손님이 다 먹지 못하고 음식을 남기는 것을 자신이 음식을 충분히 준비한 것으로 간주하므로 굳이 음식을 비울 필요는 없다. 그래서 그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 한국인은 깨끗하고 정갈하게 먹어야 예의인 줄 알지만 그들은 최대한 난장판이 되도록 먹어야 주인에 대한 예의가 된다. 그래서 식사가 끝난 뒤 탁자를 보면 마치 전쟁이 지나간 폐허와도 같다.<br/><br/>중국 사람들이 식사를 하는 광경은 왁자지껄하다. 워낙 먹는 것을 즐기는 민족이고 보니 먹는 장소가 가장 즐거운 곳이 된다. 그래서 열심히 요리를 즐기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래서 점심시간도 중화민국의 경우는 두 시간이나 되며 저녁시간은 물론 제한이 없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즐기는 것이다.<br/>식사를 오랜 시간에 걸쳐 하다보니 여러가지 놀이가 생겨났는데 「魚頭酒•魚尾酒」 라는 것도 그러하다. 종업원이 주빈에게 魚頭가 돌아가게 놓으면, 주빈은 魚頭(주로 魚眼)를 안주로 술을 한 잔 할 수 있고, 魚尾가 향한 손님은 꼬리를 맛보며 반 잔을 마실 수 있다. 이를 魚頭酒와 魚尾酒라 하는데, 주빈이 魚眼을 다른 사람에게 집어주면 그 사람이 魚頭酒를 마실 수 있고, 魚尾酒를 마실 사람이 생선꼬리를 접어서 권하고 싶은 사람을 향하게 하면 그 쪽에 앉은 사람이 魚尾酒를 마시게 된다. <br/><br/><br/>◎ &#039;하오커 (好客)&#039;<br/><br/>중국인은 &#039;하오커(好客)&#039;, 즉 손님 접대를 좋아한다. 만난지 얼마되지 않았는데 중국인이 자기집으로 초대하는 것은 상대방과의 우의를 더욱 발전시키고 싶다는 의미가 있다.<br/>중국에서는 공석(公席)이나 직장단위의 정식 초청을 할 때는 초청장을 사전에 보내는 것이 관례이며, 일반적으로 사적인 자리는 전화로 알린다. 그러나 어떤 초청이든 하루나 이틀 전에 통보하는 것이 예의이다. 중국인들은 연회에 참석할 때 다른 나라와는 달리 복장에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다.<br/>일반 가정에서 손님을 초청할 때는 상당히 신경을 쓴다. 우선 요리의 가짓수가 중요한데 중국인들에게 홀수는 불길한 조짐을 의미하므로 요리가 아무리 많아도 가짓수에 대해서는 꼭 신경을 써야 한다.<br/>식사를 초대한 주인은 푸짐한 식사와 좋은 술을 대접하는데 중국인들은 음식과 술을 적게 내놓으면 손님들이 배부르게 먹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손님에 대한 성의가 부족하다고 여긴다.<br/><br/>음식점에서 식사 초대를 받을 경우 중국인이 지정하는 자리에 앉는다. 왜냐하면 음식값을 지불하는 호스트가 좌석으로 결정되기 때문이 호스트가 착석후 앉으며 호스트가 건배를 청하기 이전에는 건배 제의를 삼가해야 한다. 음식을 맛있게 많이 먹어주며 음식이 맛있다는 칭찬을 함이 좋다. 준비 된 음식에는 적어도 한 번씩 손을 대는 것이 예의이며, 밥을 많이 먹는 것은 아직 양이 차지 않았다는 뜻이 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br/>손님의 접시에 음식이 비었을 경우 주인은 좀더 드실 것을 손님에게 권하는 것이 예의이고, 혼자 음식을 먹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실례이며, 상대를 불쾌하게 만들 수 있다. 또한 담배를 서로 권하는 것도 친밀함의 표시이므로 피우지 못하더라도 권하는 사람의 성의를 최대한 존중하려는 태도를 취하는 것이 좋다.<br/>주인은 손님과 함께 식사를 천천히 해야 한다. 손님과 함께 식사를 끝마치는 것이 예의지만 주인이 먼저 식사를 마치게 될 경우, 손님에게 『미안합니다. 저는 다했습니다. 천천히 많이 드세요.』라고 말하며 끝까지 동석한다. <br/><br/>먹는 순서도 상당히 중요하다. 대부분 냉채, 야채 볶음요리, 고기 볶음요리 순으로 먹는 것이 일반적이며, 맛도 끝으로 갈수록 맛깔스럽고 고급인 경우가 많다.<br/><br/>또한 물고기 요리를 준비하게 되면 물고기의 머리는 항상 손님 쪽으로 향하게 하고, 또 생선을 먹을 때는 생선을 절대로 뒤집지 않는다. 이는 배가 뒤집어진다는 생각 때문에 특히 연해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거의 철칙처럼 통한다.<br/>손님을 초대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술과 음료이다. 중국에서는 요리와 함께 술을 마신다. 술잔에 술이 완전히 비어있지 않아도 중국인들은 가득찬 상태(滿)를 좋아하기 때문에 계속 잔을 채운다. 연회를 시작할 때는 일반적으로 깐뻬이(乾杯-건배=원샷)라고 한다. 그리고 남은 음식과 술을 가져가는 것은 초대한 사람을 무시한다고 여겨졌으나, 최근에는 많이 바뀌는 경향이 있다.<br/>중국 사람들이 식사를 하는 광경은 왁자지껄하다. 워낙 먹는 것을 즐기는 민족이고 보니 먹는 장소가 가장 즐거운 곳이 된다. 그래서 열심히 요리를 즐기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그래서 점심시간도 중화민국의 경우는 두 시간이나 되며 저녁시간은 물론 제한이 없다.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즐기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 한국인은 깨끗하고 정갈하게 먹어야 예의인 줄 알지만 그들은 최대한 난장판이 되도록 먹어야 주인에 대한 예의가 된다. 그래서 식사가 끝난 뒤 탁자를 보면 마치 전쟁이 지나간 폐허와도 같다.<br/><br/><br/>◎ 중국인의 식사 습관 <br/><br/>중국에서는 요리가 한국처럼 한꺼번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순서대로 하나씩 나오는데 그야말로 세숫대야만한 접시에 요리를 내놓는다. 이것을 탁자 가운데 올려놓으면 탁자의 중앙은 회전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자기 앞으로 돌려놓은 다음 적당한 양을 덜어 먹는다. 물론 맨 마지막으로 나오는 것이 탕(국)과 과일(디저트)이다. 그러므로 한 가지 요리를 너무 많이 먹으면 그 다음의 요리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 되고 만다.<br/>우리나라에서의 반찬을 제외한 국과 밥은 개인별로 나누어 상을 차리는 것과는 달리 중국은 일반적으로 회전이 가능한 원탁에 한가지 요리를 한 접시에 모두 담아 판을 돌려 가며 나누어 먹는 것이 외관상 눈에 띄는 습관의 차이 중의 하나다.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할 경우 대개 채소 (쑤차이 : 素菜)와 육고기, 해산물 요리를 조합을 하고 냉채 (량차이 : 凉菜)와 더운 음식을 적절히 조정하고 간단히 밥이나 면을 곁들여 주문하면 무난한 편이다. <br/>중국인의 주식은 쌀과 밀가루이다. <br/><br/>남방 사람들은 미판(米飯-쌀밥), 니앤까오(年　-중국식 설떡) 등과 같이 쌀로 만든 음식을 즐겨 먹는 반면, 북방 사람들은 만토우(饅頭-소 없는 찐빵), 라오빙(烙餠-중국식 밀전병), 빠오즈(包子-소가 든 찐빵), 화쥐앤(花卷-둘둘 말아서 찐 빵), 미앤티아오(面條-국수), 쟈오즈(餃子- 밀가루를 반죽하여 엷게 민 다음, 잘게 저민 고기나 야채 따위를 넣어 싼 것) 등과 같은 밀가루 음식을 즐겨 먹는다.<br/><br/>부식으로는 돼지고기, 생선, 닭, 오리, 쇠고기, 양고기와 채소, 콩으로 만든 식품을 위주로 하며, 주식과 부식의 조화와 영양의 균형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br/>중국요리의 대단한 명성과 화려한 외양과는 대조적으로 실제 중국인민들의 식생활은 그리 화려하지도 대단하지도 못하다.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아침을 집에서 만들어 먹기보다는 밖에서 사먹는 것이 보통이다. 아침식사로는 요우티아오(油條), 지앤빙(煎餠)같은 밀가루 음식과 죽, 또우지앙(豆醬) 등을 주로 먹는다. 점심 때는 딴웨이(직장) 주변 혹은 구내의 식당에서 한끼를 해결하게 되는데, 양철 밥그릇과 숟가락 하나 달랑 들고 길게 줄지어 늘어 섰다가 밥 한 그릇씩 받아들고 삼삼오오 길을 걸어가면서 밥을 떠먹는다. 저녁은 대개 각자의 가정에서 요리하여 먹게 되는데 맞벌이가 대부분인 중국 가정에서는 먼저 귀가한 쪽이 식사 준비를 한다. (先來先作) <br/><br/>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대도시에서는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식생활 문화에도 많은 변화를 가지고 왔는데, 그 중의 하나는 대도시에 외식 산업이 성업 중인 것이다.]]></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Wed, 12 Feb 2014 01:43:5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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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tle>중국문화와 문자의 발전</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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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cription><![CDATA[중국 문화의 기원에 대하여 과거에는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었다. 즉 일부 학자들은 중국 문화는 동·서가 이원적으로 대립하여 발전하였다고 생각하였으며, 일부는 중원의 문화를 핵심으로 해서 사방으로 확산, 발전해 나갔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에 와서는, 대체적으로 중국 초기의 문화는 지역적으로 발전해 왔다는 데에 모두 동의하고 있다. 구석기 시대의 문화 유적들은 거의 남북 각 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나, 신석기 시대는 중원 지역 외에도 장강 하류, 태호(太湖) 연안, 동북, 감숙, 청해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이 곳들은 각각 지방 문화의 특색을 갖추면서 발전하였다.<br/><br/>중국 농업 문명은 이른바 황토(黃土) 구역과 강한(江漢) 유역의 기후와 지리적 차이 때문에 밀과 벼를 생산하는 서로 다른 문화를 만들어 내었다. 황토 구역은 식물이 잘 자라지 못하는 건조한 기후인데도 황토 질이 비옥하여 경작이 쉬운 까닭에, 비가 집중적으로 내리는 여름철을 이용하여 밀을 경작하였고, 반대로 강한 유역은 강우량이 비교적 많았기 때문에 열대 기후에 적당한 벼를 경작하였다.<br/><br/>지금부터 6,000~7,000년 전 황하 중상류에 사람들이 정착하여 농경 생활을 하였는데, 이른바 &#039;앙소문화(仰韶文化)&#039;가 그것이다. 섬서성(陝西省) 서안시(西安市) 반파촌(半坡村)의 앙소문화의 한 유적은 이미 큰 촌락을 형성하여 생활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여기서 여러 종류의 생산 도구가 출토되었는데, 돌도끼, 돌낫, 절구, 맷돌 등을 비롯한 골기(骨器)들로 그 제작이 상당히 정교하다. 또, 채소를 심고 개, 돼지 등을 사육하였으며,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는 것 이외에 마직옷을 입기도 하였다. 도기는 일상 생활에 필요한 것으로 홍색, 홍갈색이 위주였는데, 거기에는 흑색, 홍색, 또는 백색으로 된 동·식물의 형상과 도안이 그려져 있어서 앙소문화를 &#039;채도문화(彩陶文化)&#039;라고 하기도 한다.<br/><br/>그 뒤를 이어서 약 4,500년 전 황하 중하류에 &#039;용산문화(龍山文化)&#039;가 출현하였다. 이 때에는 전보다 한 걸음 더 발전하여 보편적으로 마제 석기를 사용하였고, 나무 자루로 된 돌낫을 비롯하여 땅을 파는 공구도 새로이 사용하게 되었다. 가축의 양육도 좀더 발전하여 돼지, 개 이외에 소, 양, 닭, 말 등을 길렀다. 게다가 우물을 파서 사용할 줄 알게 되었고, 하안으로부터 비교적 먼 곳에 거주함으로써 주거의 범위가 점차 확대되었다. 도기 제조의 기술도 발달하여 회도(灰陶), 흑도(黑陶) 등을 주로 사용하여 용산문화를 &#039;흑도문화(黑陶文化)&#039;라고 일컫기도 한다. 이렇게 문화의 발전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촌락이 형성되어 사회 생활이 발전하게 됨에 따라 자연적으로 필요하게 된 것이 언어와 문자였다.<br/><br/>그러면 중국 문자는 언제, 어떻게 발생하였으며, 발전되어 왔는가?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간단하지 않지만 전혀 해결의 실마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문헌에서 전하는 전설을 살펴보면 결승(結繩)과 팔괘설(八卦說)이 있다. 결승의 방법은 사안이 클 경우에는 매듭을 크게 하고 사안이 작은 경우에는 매듭을 작게 한다. 결승은 아마도 수렵 문화에서 농업 문화로 전이되는 초기 문화 단계의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팔괘(八卦)의 경우, 그 형성이 문자 이전인지 또는 문자 이후인지에 대한 확실한 기록이 없으나 자연 사물을 관찰하여 팔괘를 만들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팔괘를 보면 새, 짐승, 자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고 단지 두 가닥의 평행선에 불과한 기호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팔괘를 통해 우주 질서와 의미를 이해한다는 역학적인 접근은, 문자의 발전이라는 과학적 현상과는 구분해야 할 것이다.<br/><br/>또 창힐(倉呂)이 문자를 독창적으로 창조했다는 설도 많이 알려져 있지만, 이는 신빙성이 없다. 다만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문자를 다루었으나 창힐의 것이 당시 사회에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졌음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면 중국 문자의 시원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도화(圖畵)일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도화의 의미는 고대 이집트 문화, 인디언 또는 에스키모 문화 속에 나타나고 있는 것과는 다르다. 즉 도화 문자와 도화는 구별되어야 한다. 도화 문자는 민족 언어와 연계성을 지닌 도안이며, 도화는 단순히 사물의 형상을 통한 객관적 사물의 인지 작업에 불과한 것이다.<br/><br/><br/>중국 석기 시대의 문화 분포<br/>중국 신석기 시대의 앙소문화의 도기 위에는 그림에 가까운 동물 문양들이 많다. 단순한 필체로 표현된 이 도화들은 언뜻 보기에 다른 원시 문화권의 그림과 유사해 보이지만 이들은 모두 중국 문자의 원시, 즉 갑골문자의 전신으로 이해되고 있다.<br/><br/>앙소문화 이후 산동 일대의 구릉과 평원 지역에는 대문구(大汶口)문화가 발전하였다. 이 때는 원시적이나마 한자의 구성 법칙을 엿볼 수 있는 문자 형태를 찾아볼 수 있다. 뒤 그림에 보이는 것처럼 대문구 문화 후기 유적에서 출토된 회색 토기 위에 문자가 기록되어 있는데, 상형문(象形文)과 회의(會意)에 가까운 문자들이다.<br/><br/>이들 문자들은 중국 문자의 일원화된 궤도를 따라 발전되고 있는 원시 문자들로, 상대(商代)의 갑골문과 금문에서 동일한 구조를 가진 유사 형태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이들 문자들은 회화성이 두드러지며, 부족을 상징하는 방명(方名 = 상대의 지역 명칭)들과 더욱 밀접한 관계를 보여 주고 있다.<br/><br/>상대의 갑골문과 금문에는 다량의 상형문을 포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중국 문자 발전의 병목 현상을 효과적으로 해결했던 회의와 형성 문자도 다수 존재하고 있다. 전체 갑골문을 100%로 보았을 때 상형(象形)은 약 23%, 지사(指事)는 약 1.7%, 회의(會意)는 약 33%, 형성(形聲)은 약 28%, 가차(假借)는 약 11%, 전주(轉注)는 0%의 비율을 보이고 있다.<br/><br/>당시의 상황을 대문구(大汶口)문화의 도문(陶文)과 비교해 보면, 더욱 분명하게 갑골문이 문자의 초급 단계를 훨씬 넘어섰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당시 사람들은 중국 문자의 대량 생산에 필요한 방법을 이미 갖추었으며, 한어(漢語)에 필요한 기본적인 어휘도 만족시키는 등 당시의 언어를 자유롭게 기록하였다. 하지만 갑골문은 문자로서의 기본 조건을 구비하기는 했으나, 여전히 도화적인 성격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였다. 특히, 이러한 현상들은 동물들의 상형문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으며, 어떠한 경우에는 대문구(大汶口)의 도화들과 구별하기 힘들 정도로 원시적인 형태를 간직하고 있다. 그러나 갑골문이나 금문이 의미와 음을 나타내는 부호라는 측면에서 도기의 문양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도화가 인간의 시각적인 측면에서 각각 독립된 물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갑골문과 금문은 대문구의 도형과는 달리 상대 사회가 공인하는 일정한 의미와 통용되는 음을 대표하고 있다.<br/><br/>이들 상형문들은 상대 문자 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자연계의 구체적인 형태의 특징을 도형으로 그려 낼 수 있는 것들을 모두 상형의 대상으로 하였다. 예를 들면 동·식물은 물론 인체의 기관과 지체 등이 모두 상형의 대상이 되었으며, 생활 용구 등 거의 모든 사물들이 상형의 방법으로 문자화되어 갔다. 또, 회의(會意)의 범주에 드는 문자들 중에는 구성상 상형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는 것들이 많았다. 그 후 사회가 발전하면서 문자의 사용 범위와 이용률이 증가함에 따라, 중국 문자는 차차 도화적 성격을 벗어나 보다 간단한 부호로 발전해 갔다.<br/><br/>[네이버 지식백과] 중국문화와 문자의 발전 [中國文化-文字-發展]<br/>&nbsp;(역사 따라 배우는 중국문학사, 2010.3.24, 다락원)]]></description>
<dc:creator>최고관리자</dc:creator>
<dc:date>Tue, 04 Feb 2014 10:02:25 +0900</dc: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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